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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원 컬처팩토리대표
지금부터 30년 전 1977년도에 첫 무대에 오른 연극이 있었다. 1985년 작고한 전설적인 연극배우 추송웅의 모노드라마인 ‘빨간 피터의 고백’이다. ‘빨간 피터의 고백’은 프란츠 카프카의 단편소설 ‘어느 학술원에 드리는 보고서’가 원작이다. 아프리카 해안에서 생포된 한 원숭이가 인간 세계에 적응하려고 말과 지식을 습득하며 ‘인간화’되려 하지만, 결국 원숭이의 종착역은 서커스단이었다. 원숭이는 학술원 회원 앞에서 분노와 좌절 그리고 인간에 대한 통렬한 비판을 쏟아내는 내용이다.

‘빨간 피터의 고백’은 1985년 그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482차례 공연과 15만여 명의 관객이 구경했다. 당시의 공연시장 규모로 본다면 엄청난 히트작인 셈이다. 그는 이어 1인 6역을 맡은 ‘우리들의 광대’도 제작해 1984년까지 512회 23만5천 명의 관객을 모아 ‘1천 회 모노드라마 출연’이라는 전무후무한 대기록을 세웠다. 그러나 ‘천의 얼굴을 가진 연기자’라는 천사와 관객들의 환호와는 달리 평론가들로부터는 ‘상업주의 연극’, ‘대중추수주의에 야합한 배우’라는 비판 아닌 비판을 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한국 최고의 흥행배우이자 관객이 사랑한 배우 추송웅은 1985년 12월 29일. 44세의 나이로 눈을 감는다. 묘비엔 이렇게 씌어 있다. ‘빨간 피터, 우리들의 광대, 영원한 연극인’ 필자도 80년도 초경에 대명동 계명대학교에서 ‘빨간 피터의 고백’을 관람했던 기억이 있다. 300여 석의 객석은 거의 만석이었고 1977년 8월 첫 공연이 오르기 전 6개월 동안 매일 동물원으로 달려가 원숭이를 관찰하며 자신을 원숭이 ‘피터’로 완벽히 변신한 배우 추송웅은 시작부터 관객을 휘어잡았다. 그런데 막이 오른 지 한 10분쯤 지났을까 객석 어디선가 아이의 울음소리가 갑자기 들리는 게 아닌가. 그러자 갑자기 추송웅 배우가 공연을 멈추더니 무대 옆으로 퇴장하는 게 아닌가. 공연은 중단되고 아이를 데리고 온 관객은 어찌할 바를 모르고 역시 객석을 빠져나갔다. 객석에는 정적과 긴장감만이 흐르고 있었다. 몇 분이 흘렀을까. 무대에 다시 오른 추송웅 배우는 연극을 처음부터 다시 공연하는 것이 아닌가. 지금 같으면 관람연령제가 적용돼 어린아이를 처음부터 동반하는 게 불가능하겠지만, 당시는 그런 의식이 희박하던 시대라 일어날 수 있는 해프닝이었다. 그 이후로 지금까지 필자는 공연이 중단돼 다시 시작하는 공연을 접한 적은 없다. 요즘은 ‘관크’라는 신조어가 있다. ‘관객 크리티컬’의 줄임말로 연극이나 뮤지컬공연장 등에서 관람에 피해를 주는 관객들의 행위를 뜻하는 신조어다. 크리티컬(Critical)은 주로 게임에서 상대에게 결정적인 피해를 줄 때 사용하는 용어로, 관객이란 단어와 만나 ‘관크’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졌다. 가장 일반적인 ‘관크’ 행동은 극장 등에서 관람 도중 휴대폰이 울려 집중을 깨트리거나 휴대폰 화면을 보거나 전화를 하는 행위, 사진이나 동영상을 찍거나 지나친 애정 행각을 하는 관객등 도 해당된다. 이외에도 옆 사람과 시끄럽게 대화하거나 작품의 내용을 일일이 설명해 주거나 껌을 씹거나 음식 섭취, 공연 중 자리 이동도 ‘관크’행위에 해단된다. ‘관크’는 극장 안에서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만 또 다른 형태의‘관크’도 존재한다. 그것은 국정농단세력이 여전히 자기 잘못에 대해 반성하기보다는 뻔뻔하게 매일 자기변명과 거짓에 급급하며 우리의 삶을 피곤하게 하기 때문이다. 극장 안의 ‘관크’는 극장매니저의 제지에 순응하지만, 이들은 귀를 막고 사는 듯하다. 어떤 형태의 ‘관크’든 하루빨리 사라지기를 기원한다. 그리고 막장드라마보다 더한 부조리한 이 한 편의 연극의 막도 빨리 내렸으면 한다. 연극은 연극인들이 알아서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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