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주권 시대로 가는길(上)

▲ 정세욱 한국지방자치학회 고문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 헌법 제1조 제2항이다. 과연 국민이 주인일까? 아니다. 국회의원과 대통령이 주인이고 국민은 구경꾼일 뿐이다. 국회의원들은 입법권을 남용하여 무려 200개가 넘는 특권에 막대한 급여액까지 은밀하게 정했다. 연 1억3천여만 원의 급여에 유류비·차량유지비, 해외시찰비, 전화·우편요금까지 혈세로 받는다. 항공기 일등석, KTX, 선박 전액 무료, 연 1억 5천만원/3억원의 정치후원금 모금, 65세부터 월 120만원 연금. 보좌진수도 멋대로 늘려 7명 운영비 연 3억 8천만원이 국고 지원된다. 죄짓고도 안 잡혀가는 불체포특권, 면책특권도 있다.

이런 특권을 누리면서 하는 일이란 국민을 위한 입법활동 보다는 자기 이익 챙기는 데 급급하다. 나라 경제가 어려워 국민이 고통을 당해도 경제살리기는 외면하고 정파 간 싸움과 정권 잡는 데 혈안이 돼 있다. 국민을 무시하고 막가파 수준의 횡포를 부려도 국민은 아무런 조치를 할 수 없다. 소환권이 없다. 이제는 온 국민이 나서서 국회의원의 특권을 없애고 소환권을 규정하는 헌법개정을 해야 한다. 국회의원 보수액을 전국근로자 평균임금 수준으로 헌법에 못 박아야 한다. 국민은 헌법개정안 발의권, 법률안 발의권이 없고, 국민투표권도 없다. 이러고도 국민이 주인이란 말인가? 사드 배치도 국민투표로 결정한다면 중국이 우리 정부를 압박하며 강경하게 반대하지 못할 것이다.

정치권은 제왕적 대통령제를 개혁한다며 정-부통령제, 2원집정부제 등 중앙정부 내의 권력배분 쪽으로만 해결책을 모색할 뿐 중앙에 집중된 권력을 민주주의의 요체인 지방으로 분권하는 데에는 전혀 관심이 없다. 하지만 어느 정부형태이든 국민이 중앙정부를 감시·통제하기는 어렵다. 국민 가까이에 있는 지자체로 권력을 이동해야만 국민이 정책 결정에 참여하고 감시·통제할 수 있다. 지자체를 ‘지방정부’라고 부를 정도로 중앙 권력을 지방으로 대폭 넘겨줄 때만 국민주권의 근린(近隣) 민주주의가 실현된다.

세월호 침몰사고에 따른 대형 인명피해도 대통령에게 보고하고 지시를 받는 중앙집권체제가 초래한 비극이었다. 구조의 골든타임에 인명구조는 뒷전이고 보고하는 데 급급했기 때문이다. 사고현장에 정통한 목포해경 122구조대장이 일체의 구조지휘권을 갖고 신속한 구조조치를 취하는 분권 체제였다면 인명피해를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대구시 보건환경연구원은 2015년 6월 구(區) 공무원에 대해 메르스 양성반응 판정을 내리고서도 즉각 방역조치를 취하지 못했다. 중앙의 질병관리본부가 확진 판정을 할 때까지 발을 동동 구르며 미뤄야만 했다. 중앙집권형 방역체계는 국민의 생명을 위협하는데도 지방분권을 거부한 것이다.

광명시는 1972년 폐광된 광명동굴을 2011년부터 5년 동안에 지하갱도 체험시설, 동굴 내 공연장, ‘동굴예술의 전당’을 만들었고, 프랑스의 라스코동굴벽화 국제순회전을 개최했다. 단기간에 관광객 196만명, 2016년 세외수입 79억원이란 놀라운 성과를 거두었다. 지하개발에는 중앙정부의 규제가 없었기 때문이다.

국민이 주인이 되는 통치체제와 지방분권은 시대적 소명이다. 그것은 헌법개정에 의해서만 보장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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