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hokhlach Kurgan 피장자 복원상.
금관은 태양과 같이 빛나는 권력자의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것이며 금관의 장식물도 이와 같은 것이다.

경주 시내의 대형 적석목곽분에는 말 모양 토기를 비롯해 간두식이나 각배, 유리그릇 등 북방의 스텝 루트를 통한 문화교류의 흔적을 엿볼 수 있는 많은 유물이 출토되고 있다. 적석목곽분에서 출토되는 많은 부장품 가운데 피장자였던 왕이나 귀족의 권위를 상징하는 위세품의 대표격은 금관과 과대 등 화려한 금은 제품일 것이다.

그리고 이들 금은 제품에는 그 형태나 조형방식에 있어 신라 특유의 미적 감각과 정서가 반영돼 있지만, 전체적으로는 흑해연안의 스키타이계 문화와 금속 공예 기술의 정수가 반영돼 있어 당시의 스텝 루트를 통한 문화의 거시적 흐름을 읽을 수 있다.

△금관의 장식

금관의 전면에 장식된 세 개의 나뭇가지와 후면의 두 사슴뿔 의장은 흔히 시베리아 샤머니즘의 영향으로 여겨지고 있으며 내관에 삽입하는 새 날개 모양의 장식이나 서봉총 금관의 상부에서 장식된 새 모티브는 새가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메신저의 역할로서 인식되고 있는 북아시아의 주술적 요소가 반영된 것으로 알려졌다. 남대총 남분에서 출토된 은관이나 경북 의성 탑리 출토의 금동관 장식의 주위가 새날개 모양으로 장식된 것은 새 모티브가 지니는 그러한 의미가 경주 출토의 금관보다 더욱 원초적으로 형상화 된 것으로 보인다.

이와 이처럼과 사슴뿔을 기본 장식으로 하는 관은 흑해 북부의 아조프아조프 해로 들어가는 돈강 하류의 노보체르카스카시 부근 호흐라치 고분에서 출토된 금제관에서 그 원형을 찾아볼 수 있다. 기원 1세기경의 것으로 여겨지는 이 금관에는 중앙의 여신상 좌우에 수목과 사슴, 새가 원형 그대로 모사돼 있다.

신라의 금관과 더욱 유사한 형태의 것으로 수목과 새가 장식된 금관이 아프가니스탄의 서북지방 시바르간에서도 출토된 바 있어 북아시아적 요소가 동아시아 뿐만아니라 중앙아시아의 고대문화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기원전 1세기 후반에서 기원 후 기원후 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이 금관은 시바르간 틸리야 테페 6호 묘에서 출토된 것으로 노보체르카스크의 것보다 수목의 형태나 수목에 부착된 영락의 형태에서 신라의 금관과 매우 유사함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다섯 개의 수목 가운데 정중앙의 것을 제외한 나머지 네 수목의 정상 아랫부분 좌우에 한 쌍의 새가 대칭적으로 장식돼 있다.

이 밖에도 중앙아시아 사카 문화의 상징적 출토품의 하나로 여겨지는 황금 인간이 쓰고 있던 모자의 장식에도 금관의 입식에 표현된 것과 유사한 형태의 새가 묘사돼 있다. 카자흐스탄의 이식 고분에서 출토된 이 피장자는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금제품으로 장식돼 있었기 때문에 황금 인간으로 불리게 됐다.

페르세폴리스나 비스툰의 아케메네스조 페르시아의 부조에도 묘사된 바와 같이 끝이 뾰족한 모자를 쓰고 있는 사카인의 모자 주위에는 산양을 비롯해 날개 달린 말, 호랑이, 그리고 산에 심은 나무 위에 날고 있는 새가 묘사돼 있다. 특히 이식 출토의 모자에 묘사된 나무의 형태는 신라의 금관과 마찬가지로 한자의 출(出)자 형태를 취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수목과 새가 장식된 일본의 나라에서도 출토된 바 있다. 기원 6세기 후반의 것으로 추정되는 후지노키 고분 출토의 금동관에는 나무와 새, 영락이 장식돼 있어 틸리야 테페의 것과 기본적으로 같은 구조의 것이라 할 수 있다.

金製冠帽(경주 金冠塚, 5세기)
서봉총 금관의 새 장식
△금관에 장식된 새 : 그리핀(Griffon)

신라 금관의 내관에 삽입하는 새날개 모양의 장식과 서봉총 금관의 중앙 상부에 장식돼 있는 스키토 시베리아 문화의 흐름 속에서 그 의미를 조금 더 구체적으로 살펴본다. 러시아의식 연구의 대표적 학자인 뻬레보드찌코바는 유라시아 초원지대의 유목민들은 우주를 수직으로 구성된 3개의 세계, 즉 상계(하늘), 중계(사람들이 사는 땅), 하계(지하)로 이해했으며 이러한 세계관을 세계수(世界樹)의 개념으로 대체하고 있다.

즉 모든 나무는 수직으로 자라고 수관(樹冠), 줄기, 뿌리의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슴뿔 역시 나무와 유사한 형태로 한 줄기에서 여러 갈래의 가지로 나뉘기 때문에 스키타이인들은 사슴뿔에도 세계수와 같은 영험한 의미를 부여했을지도 모른다.

그리핀이라는 말은 그리스어에서 비롯된 것으로 그리스의 머나먼 북쪽에 산다고 알려진 괴조의 일종. 독수리의 머리와 날개, 앞다리를 가지며 황갈색의 몸통과 뒷다리는 사자의 모습이다.

봉황으로 인식되고 있는 서봉총 중앙 상부의 새와 여러 금관의 내관에 삽입하는 새 날개 형태의 관장식 그리고 틸리야 테페 금관의 새 장식, 이식 출토 황금 인간의 모자에 장식된 새들의 스키타이 문화의 연장선으로 상상의 영수(靈獸) 그리핀이 중앙아시아와 동아시아에서 지역적 변용을 이룬 형태의 것으로 보아도 무방할 듯 하듯 하다는 마치 흑해 연안 노보체르카스크의 금관에 묘사된 사실적 형태의 수목과 사슴뿔이 신라의 금관에서 매우 함축적으로 그 형태가 과감한 변용을 이루고 있는 것과 같은 것이다

틸리야 테페 제6호묘 출토 금관(기원전 1세기-기원 1세기, 카불국립박물관)
△곡옥(曲玉)의 의미와 기원

신라 금관의 장식 가운데 전면의 수목 형태가 한자의 출(出)자의 모습으로 하고 간결하게 형상화돼 수직적인 세계관 즉 성수(聖樹)를 표현한 것이라면 후면의 사슴뿔 형태 역시 매우 유려하면서도 동적인 느낌을 주는 함축적인 장식물로서 전면의 수목과 더불어 신라의 지역적 특징이 잘 나타나 있는 뚜렷한 문화변용의 사례이다.

신라 금관의 이와 같은 기본구조와 더불어 그것이 왕의 절대적인 권위를 상징하는 위신재(威信材)임을 나타내는 결정적인 요소로서 영락(瓔珞·구슬을 꿰어 몸에 달아 장엄하는 기구)과 곡옥을 들 수 있다. 아프가니스탄의 시바르간에서 출토된 금관 역시 신라 금관과 유사한 형태의 영락이 수목마다 40여개씩 장식돼 있고 중국의 풍소불묘 출토의 관식이나 일본의 후지노키 고분 출토의 금동관, 나라의 니이자와 센즈카 고분 출토의 금제 방형 관식에도 영락이 장식돼 있어 금관이 움직일 때마다 광채를 발함으로써 그 위용을 더하고 있다.

신라 금관 가운데 황남대총 북분의 금관과 금관총 금관, 서봉총 금관, 천마총 금관에는 곡옥이 장식돼 있다.

호흐라치 고분 출토 다이아뎀(Hermitage Musuem)
곡옥의 기원은 ‘맹수의 치아’를 장신구로 사용함으로써 맹수와 같은 위용을 발휘하고자 하는 고대인의 염원이 담겨 있다는 설을 비롯해 고대 농경사회 있있어서의 월신(月神)신앙이 반영된 초승달 모양, 생명을 상징하는 태아의 모습 등 다양하다.

금관의 전체구조는 그 기본 모티브가 흑해지방에서 비롯됐다 할지라도 금관의 세부장식이나 이을 지탱할 수 있는 금속공예기술에는 신라 특유의 아이디어가 반영돼 있다.

민병훈 전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은 “신라 금관은 소재 자체가 지니는 화려함과 뛰어난 장식성으로 인해 고대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유산의 하나로 인식되고 있다. 금관의 기본 모티브는 지중해 세계에서 그 기원을 찾아볼 수 있다 하더라도 과감하면서도 함축적인 구도로 균형감과 세련미를 더하고 있어 유라시아 각지에서 출토된 그 어떤 관련 유물과도 비견할 수 없을 정도의 높은 완성도를 지니고 있다”며 “그 때문에 아시아 및 구미지역에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기획전시를 개최할 때 외국의 여러 큐레이터가 이구동성으로 제일 선호하는 유물 역시 금관이다. 이는 중국을 포함한 아시아 전 지역에서 그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희귀성을 지녔을 뿐만 아니라 유라시아를 관통하는 스키토 시베리아문화의 흐름을 통해 유입된 교류의 산물이자 신라인의 독창성과 미의식이 집성된 결과물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신라의 금관은 한국을 대표하는 최고의 문물이자 아시아 문화권을 대표하는 인류문화유산의 하나임이 틀림없다 ”고 말했다. 사진·자료 민병훈 전 국립중앙박물관 아시아부장

선비 묘 출토 관식(4세기, 중국 요녕성박물관)
서봉총 금관과 금제드리개(신라 5세기, 국립중앙박물관)
일본 후지노키 고분 출토 금동관(6세기, 가시하라 고고학박물관)
틸리야 테페 제6호묘 출토 금관의 수목 및 새 장식
내몽골 흉노 무덤에서 출토된 새 장식 금관(기원전 3세기, 내몽골박물관)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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