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네스테레*, 세상의 끝에 닿은 순례자들은
바닷가 외진 절벽에 서서
그들이 신고 온 신발을 불태운다

지는 해를 바라보며

나는
청둥오리 떼 날아가는 미촌 못 방죽에서
매캐한 연기에 눈을 붉히며
내가 쓴 시를 불태운다

*피네스테레:포르투갈의 지명. ‘산티아고의 길’의 끝으로 로마인들은 이곳을 세상의 끝이라고 믿었다.




감상) 저녁이면 누군가 우는 소리를 듣는다. 누군가 맨발로 아스팔트 위를 걷는 소리를 듣는다 찰방찰방 물 건너는 소리를 듣고 바람 바람 맞서며 언덕 넘는 소리를 듣는다. 나는 그런 소리들 때문에 저녁을 좋아한다. 나대신 누가 울어주는 것 같고, 내가 가야할 길을 누군가 대신 걸어가 주는 것 같고, 내가 하지 않고도 다 한 것 같고…… 누군가 나 대신 황막한 하루의 끝에 서 주기를 기다리는 비겁한 나는 아무 것도 불 앞에 내놓지 못하고.(시인 최라라)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