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3일 오전 말레이시아 쿠알라룸푸르 공항에서 피살된 것으로 알려진 김정남(46)은 고(故)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이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이다.

김정일과 그의 본처 성혜림 사이에서 태어난 김정남은 1980년대 스위스 제네바에서 유학하며 정치외교학을 전공했다.

김정남은 2000년대 초까지만 하더라도 아버지 김정일의 자리를 물려받을 강력한 후계자였다.

김정일이 김일성으로부터 권력을 물려받은 선례에 따라 오래전부터 ‘황태자’로서 후계수업을 받았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이 강조하는 ‘백두혈통’인 김정남은 1988년부터 2001년까지 줄곧 보위부에서 근무하며 간부를 역임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자유분방한 성격과 잦은 돌출 행동 탓에 김정일의 눈 밖에 나면서 후계 구도에서 밀려나기 시작했다.

김정남이 후계 구도에서 밀려난 결정적인 계기는 일본 나리타공항 밀입국 미수사건이었다.

2001년 5월 아들과 두 명의 여성을 대동하고 도미니카 가짜 여권을 소지한 채 나리타공항을 통해 일본에 입국하려다 체포돼 추방된 것.

이후 중국과 마카오 등을 전전하던 김정남은 2009년 1월 베이징에서 외신 기자들에게 “후계 구도는 아버지가 결정할 문제”라며 자신은 아무런 관심이 없다는 점을 애써 강조했다.

또 사흘 뒤 마카오에서는 “중국이 자신을 후계자로 선호하고 있다는 것은 사실이 아니다”라고 부인하며 아버지 김정일의 건강상태가 양호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2011년 12월 김정일이 사망하고 김정은이 권력을 장악하자 북한의 김정남에 대한 경제적 지원은 사실상 끊겼다. 김정남이 호텔 숙박비도 내지 못할 정도로 자금난에 시달린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김정은은 적통이자 백두혈통인 김정남의 존재 자체를 껄끄러워 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김정남은 2010년 아사히TV와의 인터뷰에서 “개인적으로 3대 세습에 반대한다”고 발언하는 등 김정은의 심기를 계속 건드렸다.

김정남을 챙겨온 것으로 알려진 고모부 장성택이 2013년 12월 처형되면서 가뜩이나 입지가 좁던 김정남은 더욱 궁지에 몰리며 중국과 동남아시아, 유럽 등을 전전했다.

이런 정황을 미뤄볼 때 이번 김정은이 권력 유지를 위해 가장 큰 걸림돌이라고 할 수 있는 김정남을 제거한 것 아니냐는 추측이 나온다.

김정남은 첨단산업에 식견을 가진 인물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1990년 조선컴퓨터센터(KCC) 설립을 주도했고, 1998년 북한의 IT 정책을 주도하는 조선컴퓨터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슬하에 금솔·한솔·솔희 등 2남 1녀를 뒀다.

관련기사
연합
연합 kb@kyongbuk.com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