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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일연과 어머니 이야기, 세계유산으로

[경북, 정체성을 말한다] 21. 삼국유사 일연과 어머니 이야기

정진원 동국대 연구교수 cho@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2월16일 17시15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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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상북도 군위군 고로면 화북리 화산에 위치한 절 '인각사' 전경. 문화재청 제공

‘경북의 정체성을 말한다’ 시리즈에 꼭 쓰고 싶은 주제가 있다. 군위 마을과 인각사에 전해 내려오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 대한민국의 정체성을 띠는 이야기. 우리 어머니의 이야기이다.언젠가 다양한 종교인들이 모여 모두 공감했던 주제는 결국 각자의 종교가 아닌 어머니 이야기였다고 들었다. 어쩌면 삼국유사가 살아 있는 인간의 이야기에 초점을 맞춘 명작이 된 데에는 일연과 그의 어머니 이야기가 삼국유사를 관통하고 있기 때문일지 모른다.

특히 편제가 비슷한 고승전들과 달리 삼국유사에만 들어있는 마지막 장 효선편 다섯 가지 이야기에는 사이사이 일연과 그의 모친인 낙랑군부인 이씨의 일생이 촘촘이 누벼져 삼국유사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다.

일연에 대한 행장은 인각사에 남아있는 ‘고려국 화산 조계종 인각사 가지산하 보각국존 비명병서’라는 긴 제목의 비문에 자세하다. 일연과 어머니와 관련된 내용만 뽑아보기로 하자.

일연의 어릴 적 이름은 견명, 경주 김씨로 아버지는 김언필인데 벼슬하지 않고 일찍 작고한 듯하다. 일연스님 덕분에 아버지는 나중에 좌복야로, 어머니 이씨는 낙랑군부인으로 봉해졌다.

일연의 태몽은 해가 집으로 들어와 비추기를 사흘이나 한 까닭에 이름이 견명이 되었다. 일연의 외모는 단정 엄숙하고 잘 생긴 콧마루에 입매가 방정한 모습이었다고 한다(豊準方口). 걸음은 소처럼 여유롭고 눈은 범의 눈초리를 했다(牛步虎視)고 묘사되어 있다. 이렇게 태어나기 전부터 비범하고 잘 생긴 아홉 살 아들을 어머니는 경북 경산에 머물며 멀고 먼 전남 광주 무량사로 보내고 일구월심 아흔여섯이 되도록 아들을 그리며 살았다. 그 마음이 얼마나 간절했던지 일흔여덟 늙은 아들은 고려 충렬왕이 내린 국존 지위도 사양하고 군위 인각사가 있는 화산으로 내려와 극진히 어머니를 봉양한다.

아흔다섯 노모와 일흔여덟 아들의 마지막 해후. 21세기에도 흔치 않은 장수모델이거니와 당시 고려는 세 차례 몽고 전란 중으로 전쟁과 가난 속에 평균 수명이 서른 살이었다던 조선 시대 수명에도 훨씬 못 미쳤을 것이다.

모자가 서로를 위하는 마음과 전 생애를 들여 아끼는 마음은 삼국유사 효선 편을 위시한 곳곳에 가득하다. 효선편이 어떤 내용인가. 가난한 집안 하나뿐인 아들 진정스님의 출가를 위해 마지막 쌀 한 톨까지 주먹밥으로 싸준 노모의 이야기, 가난한 김대성이 부잣집 아들로 다시 태어나 전생의 어머니를 봉양한 이야기, 아픈 아버지를 위해 자신의 넓적다리 살을 베어 아버지를 살린 향득의 이야기, 가난한 손순이 어머니를 위해 차마 못할 짓인 어린 아들을 묻는 이야기, 가난한 집 딸 지은이 어머니를 봉양하기 위해 남의 집 품팔이로 들어간 것을 어머니가 알고 대성통곡하는 이야기들로 이루어져 있다.

이 기막힌 가난을 사실적으로 들여다보자. 진정스님의 노모는 극락왕생했다지만 결국 혼자 아사했을 것이다. 김대성은 하나를 보시하면 만 배를 얻는다는 스님의 말을 듣고 없는 살림에 전 재산을 보시했지만 홀어머니에게 효도 한 번 변변히 못한 채 갑자기 목숨까지 잃는다. 향득이 자신의 살을 베는 자해 행위 정도는 약과이고, 손순은 노모의 끼니를 위해 자기 자식을 묻는 비정한 부모노릇도 마다 않는다. 구걸보다 더 못한 일이 남의 집 품팔이라고 어미가 통곡하는 것을 보면 딸이 어떤 일을 하는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대견사(보당암 추정) 탑
그런데 이 다섯 가지 이야기가 일연스님의 행장과 오버랩되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 아홉 살 나이에 효선 편 주인공처럼 일연은 홀어머니와 생이별을 한다. 타박타박 걸어갔을 경상북도 경산과 전라남도 광주의 멀고 먼 길이 눈앞에 그려진다. 물리적 거리보다 어머니와 떨어져야 했을 심정적 거리는 진정스님의 경우보다 천만 배는 멀었을 것이다. 아홉 살 출가의 길이라니.. 그는 그렇게 양양 진전사에서 구족계를 받고 스물한 살 나이에 스님의 과거시험인 상상과에 장원을 한다. 그 후 일연은 어머니 계신 곳과 100여리 떨어진 포산(비슬산) 보당암에 자리를 잡고 삼십년 넘게 그 지역 곳곳에 주석한다. 지금은 한 시간도 안 되는 거리지만 그 당시는 꽤 먼 길이었을 것이다. 그래도 첫 출가한 광주 무량사나 비구계를 받은 강원도 진전사에 비하면 지척인 거리이다. 현재 대구 달성군에 보당암으로 추정되는 비슬산 대견사지와 대견사탑이 아직 남아있다.

그 이후 남해 정림사, 영일 오어사, 청도 운문사, 강화 선월사, 개경 광명사 등에서 고려대장경 도감 일부터 각 절 주지, 고려국사로 책봉되기까지 승려로서 영광의 길을 걸었지만 그 길을 마다하고 퇴소한 곳은 군위 인각사가 있는 곳이다.
남아있는 일연선사 비석(인각사)

그곳에서 딱 1년, 김대성의 전생 어머니처럼 아들의 지극한 봉양을 받았을 일연의 어머니는 96세. 그해 극락왕생하시고 늙은 아들 일연도 5년 후 84세에 입적한다. 문도들이 자기 부도 탑 세울 위치를 의논하자 일연은 다시 살아나 어머니 묘소에서 잘 보이는 곳을 지정하고 눈을 감는다. ‘인각사-일연모친묘소-일연부도탑’의 위치는 이러한 연유로 트라이앵글을 이루고 있다. ‘아침에 해가 뜨면 일연선사의 승탑에 비친 햇살이 어머니의 묘소를 비추고 어머니 묘소 또한 동쪽으로 보고 있는 스님의 탑비를 내려 보듯 감싸고 있다‘는 이야기가 마을에 전해 내려오고 있다.
복원된 비석(인각사)


한 소년의 평생에 걸친 사모곡은 삼국유사 속에서 진정스님의 출가와 김대성의 후생, 효녀 지은의 해피엔딩으로 세세생생 삼국유사의 효선 편을 웅변하며 살아 숨쉬고 있다. 불가에서는 부모은중경과 같은 경전에서 부모에 대한 효를 부처의 가르침으로 설파하고 있다. 특히 어머니의 잉태와 출산, 키워주시는 은혜는 눈물없이 들을 수 없을 만큼 구구절절 마음을 흔든다.

효선(孝善)의 의미가 무엇인가. ‘효도와 불교적 선행’이야 말로 둘로 나눌 수 없는 인간의 궁극 가치라는 뜻이다. 효도와 붓다의 가르침이 둘이 아닌 것이다. 전 생애를 들여 출가 수행과 그에 따른 사모곡을 씨실과 날실 삼아 수놓은 삼국유사, 그 안의 효선편이 현대 사회가 지향해야 할 잃어버린 인간가치의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다.

승속을 떠나 효와 수행이 다르지 않다라는 마음으로 사는 것, 우리가 부처되는 길일 것이다. 차제에 인각사에 임시로 안치한 일연의 부도탑을 삼국유사 효선편을 낳은 어머니가 바라보이는 원래 자리로 돌려 놓는 것도 우리가 해야 할 효선의 한 방편이 될 듯하다.

특히 우리가 잊고 있던 인간의 최고 가치, 어버이와 자식에 대한 사랑과 정성은 앞으로 우리가 지향할 정체성의 대표 브랜드로 자리매김할 테마이다. 경북에 산재한 이 주인공의 자취를 찾아 보존하면 군위와 인각사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삼국유사는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될 가치가 충분하다고 생각한다. 그러한 기대를 품고 2017년 2월 삼국유사학답사회 회원들과 군위와 인각사 답사를 하였다. 

길도 없고 이정표도 없는 험한 산비탈 일연 모친 묘소 옆에는 군위 댐이 들어서 마을은 이미 수몰되었고, 2016년에도 없었던 인각사 맞은 편에는 중앙선 철도 터널이 뚫리고 있었다.

일연의 우보호시를 짐작케하는 군위 우보면(조선시대 ‘이우보인(以友補仁)’의 우애로써 인을 서로 돕는다는 유래는 견강부회하다)에는 대구공항 유치를 진행하고 있었다. 

▲ 정진원 동국대 연구교수
군위는 우리나라에서 세 번째로 작은 인구 2만4천의 군이라고 한다. 군위가 고향인 김영만군수는 어떻게든 군위를 잘 살게 하려는 역사적 사명을 띠고 불철주야 노력하고, 인각사 주지스님은 어떻게든 인각사 앞 터널은 막아야겠기에 터널반대 1인 시위를 하다가 주지를 그만두셨다. 경제논리와 문화유산의 가치는 이렇게 상충되기 일쑤여서 두 입장을 들은 필자로서는 참으로 난감하였다. 

세계유산 등재기준인 ‘탁월한 보편적 가치’와 ‘원래 가치를 보유한 진정성’은 이미 훼손된 것이 아닌가 걱정스럽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여전히 그 터에서 지어진 ‘삼국유사’라는 세계적인 기록유산이 건재하다. 세계가 인정해야만 세계유산이 아니라 이제 우리가 스스로 인정하고 보존할 세계적 보편적 가치와 유산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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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현석 기자

    • 조현석 기자
  • 뉴미디어국장 입니다. 인터넷신문과 영상뉴스 등 미디어 분야를 맡고 있습니다. 010-5811-40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