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남 하동엔 가마고개란 고개가 있다. 이 고개는 기막힌 사연이 얽힌 전설이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한다. 이 작은 고갯마루에서 시집가는 두 신부의 가마가 마주쳤다. 서로 상대방에게 길을 비키라며 시비가 벌어졌다. 문제는 두 집안의 자존심 싸움이었다. 서로 다른 학문계통을 가지고 오랜 세월 다투어 오던 앙숙 관계였다. 한쪽은 남명 조식의 제자 집이었고, 다른 한쪽은 퇴계 이황의 제자 집안이었다.

어느 한쪽이 양보해 비켜주거나 비켜가면 아무 문제가 없었다. 이처럼 간단한 해결책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사생결단의 대치를 벌인 것은 두 가문의 뼛속 깊이 뿌리내린 파벌의식 때문이었다. 비키는 쪽이 상대에게 굽히는 것이라고 단정, 어느 한쪽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두 가마는 그곳에서 무려 사흘이나 버텼다. 그러는 동안 학맥을 같이하는 유생들까지 합세, 천막을 치고 농성을 벌였다.

신부를 기다리던 두 집안의 신랑집에서도 달려와 대치에 합세했다. 마침내 양쪽 학파의 문하생들도 합류, 사태는 더욱 악화됐다. 집안의 자존심 싸움이 학파의 싸움으로 번지자 혼사의 일은 온 데 간 데 없이 사라졌다. 서로의 학문을 헐뜯는 싸움으로 변질됐다. 오랫동안 쌓여온 반목을 이 기회에 결판낼 작정으로 팽팽히 맞섰다. 한치의 양보 없이 버티던 두 집안은 서로의 자존심을 더럽히지 않고 사태를 해결할 방법을 찾았다. 그것은 두 가문의 어른들이 자기 가문의 딸에게 자결을 강요하는 극약 처방이었다. 큼직한 돌덩이가 신부가 탄 가마 속으로 들어왔다. 두 집안 딸들은 그 돌을 치마폭에 싸안고 벼랑 아래로 뛰어내렸다. 시집가던 두 신부가 강바닥에 가라앉는 것을 본 뒤 가마는 오던 길을 되돌아 갔다.

친박, 비박 간의 자파 이익과 자존심 싸움에 의해 사상 초유의 보수 집권당 분당으로 보수 궤멸을 재촉한 자유한국당의 분열은 ‘가마고개 비극’의 아바타다. 한국당 초선 20여 명이 한국당과 바른정당 두 당의 재통합의 길을 찾고 있는 것은 보수의 기사회생에 한 가닥 희망이 될 수 있다. 두 쪽 모두 폐족을 면하려면 재통합의 길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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