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에서 여고 다닐 때
우리 집 수소 교미 한 번 붙인 돈은
자취하던 내 한 달 생활비였다
덤으로 나는
남녀관계와 성교육에 대해서도
어느 정도 눈 뜨게 되었는데
당시만 하더라도 귀하신 수컷은 제법
비싸게 놀 줄 알았다
암컷이 적극적으로 들이대면
공연히 꼬리 흔들어 쇠파리를 쫓거나
엉덩이 슬슬 피해 가며
음부 더부룩한 암컷 몸 달군다
그러다 어지간하다 싶을 때 한순간
사정없이 올라타는 수컷
9회 말 끝내기 안타처럼
한 방에 해결하는 그 저력 놀란 암컷은 후들거리는 다리 사이로
염치없이 질금질금 물똥 싸제끼지만
절정은 언제나 너무 짧다
그처럼 어떤 일에도 순서는 있는 법
사정 끝내고 암컷 골고루 핥아주는
수컷의 신사적 마무리까지
저 말없음의 예의에 경의를 표하지 않을 수 없다



<감상> 바람이 불어오면 나무는 아무 저항 없이 몸을 젖혀준다 바람의 속도에 맞추어 혹은 바람의 힘에 맞추어 나무는 아무 저항 없이 흔들려준다. 그러다 바람이 지나고 나면 휘었던 몸을 세우고 제 본연의 체위로 선다. 지나간 바람이 저도 모르게 뒤돌아보게 되는 건 그런 나무의 자세 때문이다 나무가 그 순간 아무 생각 없어서 그러는 것은 아니다. 아무 생각 없어서 그렇게 바람에게 저를 내어주는 것은 아니다.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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