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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호 호서대교수 법학박사
미국이 쿠바 망명자들을 훈련시켜 고향에 되돌아가 체제에 대항하는 반란을 일으키는 프로젝트를 계획할 때 이와 같은 극비 군사작전의 수행 여부에 대한 결정은 대통령 혼자서 할 것으로 기대했지만, 당시 케네디 대통령은 이 계획을 집단에서 결정하도록 극비문서를 회람시켜버렸다. 왜 그랬을까? 집단이 의사결정을 하는 경우는 개인이 혼자서 하는 경우보다 여러 가지 장점이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었다.

집단의 의사결정은 무엇보다도 많은 구성원의 정보자원을 활용할 수 있으므로 오류를 쉽게 발견하고 최선의 선택을 할 수 있다고 한다. 과연 그럴까? 그렇지 않다. 잘못된 해석이다. 오히려 집단의 의사결정은 그 질적 수준이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너무 많은 사람이 참여하기 때문에 사소한 문제에 대하여도 논쟁이 치우치고 복잡한 문제는 무시하거나 간과해 버리기 때문이다. 집단의 의사결정이 완벽하지 못한 경우가 현실 세계에서는 무수하다. 주식회사 이사회를 보자. 이사회는 회사의 활동을 공동으로 감독하는 선출되거나 지명된 이사들의 본체이다. 주식회사의 업무집행은 상법(제393조)의 규정에 따라 이사회의 결의로 한다. 형식적으로 이사회는 기업 경영관리의 최고 의사결정 기관이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경영 실권은 사장을 비롯한 최고 경영자가 장악하고 있으며 이사들은 자신들의 권한행사인 의사결정을 충실히 수행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불확실한 정국에서 이른바 벚꽃 대선이 수면위로 올라와 있다. 대통령선거는 우리 사회에서 최고의 집단의사결정이다. 유권자 수천만 명이 자신의 정치적 선호를 투표로서 드러내니 이보다 더 큰 집단의사결정이 어디 있겠는가? 특정 후보의 지지자들은 누구나 낙관적인 전망으로 개혁이나 새로운 공약에 자신의 열망을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집단의 의사표시에는 항상 오류가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집단오류는 A 후보가 아니면 안 된다는 군중심리에서 비롯될 수 있다. 특히나 이분법적 사고가 지배하는 한국의 정치판에서 대통령 선거는 최대의 집단오류를 발생시킬 수밖에 없게 돼 있다. 집단오류는 이율배반적인 집단사고(集團思考)에서 비롯된다. 집단사고는 구성원들이 응집력이 강한 내(內)집단에 깊이 관여하므로 만장일치 분위기가 팽배해 대안을 현실적으로 평가하지 못하도록 동기를 억압하여 생기는 현상이다. 이 과정에서 구성원들은 서로에게 쉽게 동의를 해버리므로 실수를 피하지 못하고 오류를 범하게 된다.

지금 우리 사회는 많은 국민이 집단최면에 빠져 있다. 왜냐하면, 주저함도 없이 사회적 역동성과 정서적 유대를 드러내 보이며 위험스런 주말 소요(騷擾)에 가담하고 있지 않은가? 물론 집단은 때때로 성원들의 무지(Unkenntnis) 때문에 계획, 희망, 선호와 동떨어진 결정을 하기도 한다. 나아가 다원적 무지는 사람들로 하여금 마음속에만 있고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규범에 동조하게 한다. 가짜뉴스가 이를 반증한다. 집단의사결정에 앞서 자신이 부담해야 할 비용, 불편, 고통 등 부정적인 결과를 재고해야 하는데 이러한 과정이 생략된 선동의 함정에 빠지기도 한다. 일단 사람들이 집단으로 의사결정을 하게 되면 이미 선택한 자신의 결정을 번복하지 않으려는 함정에 계속 빠져든다. 애초에 선택한 대상이 가치가 없다면 매몰 비용은 무시하고 재빨리 빠져나와야 하는데 대개는 그러하지 못한다. 결국, 매몰비용으로 사회는 많은 자원을 계속 투자할 수밖에 없게 된다. 집단오류의 전형적인 폐해이다. 대개 집단오류는 집단의 응집력, 집단과 조직의 구조적 불화, 도발적 상황 등에 기인한다. 응집력이 강하면 비판적 사고가 나오지 못한다. 화기애애한 관계만 유지되고 논쟁은 피하며 구성원은 장식용으로만 존재한다. 조기 대선이라는 도발적 상황에서 우리 모두가 집단오류에 빠진 우를 범해서는 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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