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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시인
새장 안의 새는 창공을 날아다니는 새를 그리워하고, 새장 밖의 새는 먹이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새를 부러워한다는 경구가 있다. 역지사지의 배려 없이 세상을 바라보는 인간의 편협심을 빗댄 말이다. 하지만 치열한 경쟁으로 지새우는 현역과 여유로운 노후를 구가하는 은퇴자는 어쩌면 그 새들처럼 서로를 원할지도 모른다.

우리는 날마다 하루라는 세월을 받는다.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공평하게 주어진 나날들. 언젠가 바닥을 드러낼 생애의 종점을 향해서 걷는다. 각자의 일월은 제각각의 삶만큼이나 천차만별이다. 치열하게 혹은 무료하게 나름의 일과를 보내는 사람들. 매일을 벽돌처럼 쌓다 보면 죽음이란 천상에 이른다.

나는 하루라는 시간에 정성을 들인다. 그 광음의 물방울이 모여서 인생이란 도도한 강물을 이루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자연의 법칙처럼 반드시 할 일의 목록을 가졌다. 영어 공부와 애견 산책과 건강 달리기, 그리고 문학이다. 모두가 추구하는 가치와 관련됐다. 틈나는 대로 몰두하는 독서는 기본이다.

러시아에는 ‘이반’이란 이름이 흔한 것 같다. 문학 작품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이반 일리치의 죽음’은 톨스토이의 소설이다. 남부럽지 않은 삶의 중년 남자가 사소한 부상으로 졸지에 죽음을 맞는 이야기.

또한 반체제 작가 솔제니친의 소설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도 있다. 그의 처녀작이자 문명을 드높인 대표작. 제목 그대로 주인공 이반 데니소비치 슈호프란 남자의 하루 생활을 그렸다. 그냥 엔간한 일상이 아니라 강제수용소라는 특수한 공간에서의 모습이다. 스탈린 체제 당시 팔 년간의 수용소 참상을 직접 겪은 작가의 생생한 폭로이기도 하다.

근자에 자잘한 일상을 반성하다가 불현듯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가 오버랩 됐다. 책의 대강은 익히 알았지만, 지금껏 탐독하진 못했다. 수용자의 매일은 어떻게 흘러가는지 호기심이 생겼다. 퇴직자의 하루도 그의 일상처럼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패러다임을 요구할 것이기 때문이다.

일독이 필요한 도서를 선택할 땐 두 가지를 중시한다. 출판사와 출판일. 특히 외국 작품은 유명 출판사의 번역본을 찾는다. 시대의 상황과 감성에 맞춰서 정확히 번역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가급적 최근에 발행된 신간을 고른다. 미지의 원시림 같은 책장을 넘기는 산뜻함을 안겨 준다.

결론을 말하면 포항을 대표하는 포은중앙도서관 그 장서의 빈곤을 절감한다. 노벨상 수상 작가의 대표작이 이러하니 다른 이의 작품은 불문가지 아니랴. ‘이반 데니소비치의 하루’는 소담출판사 1994년 판, 문예출판사 1999년 판, 민음사 2007년 판이 비치됐다. 하나같이 십 년 넘은 오래된 책들.

책장은 낡아도 내용은 새롭다. 간결한 문체로 묘사한 생생한 체험담이 절절하다. 평범한 농부 출신으로 조국을 위해 전쟁에 참전했으나,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강제수용소로 끌려온 주인공. 폐쇄된 공간에서도 죄수를 등치고, 더 편하고, 더 먹고, 더 쉬려는 다양한 인간 군상의 부조리가 펼쳐진다.

혹한과 기아에 시달리면서도 모범적으로 수형하는 그의 하루는 감사의 염으로 끝맺는다. 수용소라는 극한의 상황에서 행복을 발견하는 슈호프. 우리의 소소한 나날도 고마운 마음을 가지면 감사할 일이 널렸다. 인생의 가장 귀한 보물은 평범한 일상의 순간이다. 어느 외국 작가의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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