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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경북생명의숲 상임대표·화인의원 원장
얼마 전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을 지나다 막무가내로 베어져 나간 나뭇더미를 보며 왠지 씁쓸해했던 적이 있다. 워낙 낡고 오래된 건물이었으니 재건축은 당연해 보였지만 공사를 이유로 그 오랜 시간만큼 무성히 자란 아파트단지 내 나무들을 그토록 허망하게 베어낸 데 대해서는 선뜻 마음이 가질 않았다. 평소 곧게 자란 그 나무들을 지나칠 때마다 알게 모르게 눈길이 많이 갔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 지역에서는 ‘그린웨이 조성’을 주요 시정과제로 설정하고 바다는 물론 강, 하천 주변 생태길 조성 그리고 도심재생을 위한 도시 숲 조성이 한창이다. 하지만 도심 숲 조성이란 거창한 계획하에 아무리 열심히 나무를 심고 꽃길 조성한다고 해도 어느 한쪽에서 개발공사에 걸리적거린다고 수십 년 자란 나무를 아무렇지도 않게 잘라 버리는 행태가 지속되는 한, 녹색 도시의 염원은 공염불이 될 공산이 크다. 지난 수년간 지역 환경단체는 물론 주민들의 반발에도 불구하고 급격한 도시 외곽지역 개발로 너무도 많은 숲이 훼손된 것을 우리는 지켜봐야 했다. 지금도 쾌적한 주거환경으로 전국에서도 손꼽히는 우리 지역 내 한 주거단지에서는 민간업자에 대한 개발허가 여부를 두고 주민과 행정기관 간의 찬반논쟁이 뜨겁다. 지금부터라도 제대로 된 녹색정책의 결과를 이루려면 개발허가 과정에서부터 친환경적인 세심한 주의를 기울일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자연과 더불어 살기를 즐겨하던 사람들이 숲에서 멀어진 건 산업혁명 이후 도시가 발달하면서부터다. 우리나라 역시 7, 80년대 급격한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사람이 농촌을 떠나 도시로 모여들었다. 지금도 여전하지만 늘어 난 도시인구는 도시를 점점 더 외곽으로 팽창시켰고, 그럴수록 주변의 나무는 더 많이 베어지고 강과 하천은 계속해서 매워졌다. 그리고 숲에서 멀어져갈수록 사람들의 정서는 더욱 메말라 만 갔다. 이런 가운데 프랑스의 철학자 루소의 ‘자연으로 돌아가라’는 말은 본래의 뜻보다는 메말라 가는 사람들의 정서 회복을 위한 마지막 경고문처럼 여겨졌다.

‘지구의 허파’라 불리는 아마존 열대림에 사는 어느 부족은 해마다 불법벌목으로 사라지는 숲으로 인해 그대로 자외선에 노출되어 부족 구성원 대부분이 시력을 잃었다는 방송을 본 적이 있다. 태양광선의 약 80%를 흡수하여 인체에 해로운 자외선을 차단하는 역할을 해 온 숲이 사라진 결과로서는 너무 잔인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인간은 도시 속에 있을 때보다 숲 속에 있을 때 스트레스 호르몬인 코르티솔의 농도가 훨씬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두뇌활동 중 사고하고 판단하는 역할을 주로 하는 전두전야의 총 헤모글로빈 농도 역시 숲 속에 있을 때 더욱 낮게 나타났다. 이는 숲이 문명 세계를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쾌적함을 주는 동시에 스트레스를 해소해주는 없어서는 안 될 중요한 자원임을 말해준다. 나아가 숲에서 보낸 인류의 오랜 역사가 증명하듯 인간의 내면에는 항시 숲에 대한 그리움이 있어 숲 속에서의 안정감이 최고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무한경쟁의 세상을 살아가는 현대인의 질병에 가장 큰 영향을 끼치는 것은 스트레스다. 그리고 스트레스가 위험한 것은 우리 몸의 면역력을 떨어트리기 때문이다. 스트레스 해소에는 쉬는 게 약이다. 약 중에 나무에 기대어 쉬는 것(休)이 가장 좋은 보약이다. ‘숲은 생명을 유지하는 공간체계’라고 어느 생태학자는 말했다. 좀 과장하자면 숲을 가꾸거나 없애는 것은 생명을 살리거나 죽이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숲은 우리에겐 중요하고 그 숲을 가꾸는 일이야말로 참으로 값지다는 얘기다. 아무리 잘 만들어진 인공조경물이라 해도 나무 한 포기, 풀 한 포기와 같을 순 없다. 빌딩 숲이 진짜 숲이 아닌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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