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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원 (주)컬처팩토리 대표
연극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가? 왜 사람들은 극장을 찾아가는가? 그곳에는 현실에서는 벌어질 수 없는 환상과 환영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연극(演劇)이라는 글자를 잘 살펴보자.

연극이란 말의 구성은 통하다. 윤택하다. 스며든다는 말의 연(演)자와 극(劇)자로 구성돼 있다. ‘극’ 자를 더 자세히 살펴보면 ?(호피무늬 호)+豕(돼지 시)+?(칼 도)자로 구성돼 있다. 호랑이와 돼지가 칼을 들고 싸우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럽게 펼쳐지는 것을 말한다.

관객은 어두운 객석에서 자연스럽게 현실을 투영하는 이야기들은 듣고 본다. 뮤지컬은 노래와 춤이 더해진다. 종류도 다양하다. 연극, 뮤지컬, 대사 없이 몸짓으로만 표현하는 판토마임, 창작극, 번역극, 소설 등을 각색해서 무대에 올리는 번안극, 1인이 무대 위에서 혼자 연극을 이끌어가는 모노드라마, 비극, 희극 등이다. 그러나 연극은 영화가 가지고 있는 것을 가지지 못한 결정적인 약점이 있다. 영화는 저장(貯藏), 복제(複製)가 가능하다. 그래서 전국의 몇천 개 극장스크린에서 상영된다. 이는 강력한 무기로 작동돼 천만 관객을 모을 수 있는 원동력이 된다. 그러나 연극은 어떠한가. 연극은 관객과 배우가 같은 공간에서 같은 시간대에 공존해야만 가능하다. 그곳에서 라이브로 공연돼 진다. 히트작 같은 경우는 배우를 세팀 정도 운영해서 전국의 세 군데 극장에서 공연돼 것이 최대이다. 그래서 연극은 영화보다 현대사회에서는 비효율적이고 대량복제가 불가능한 예술 장르이다. 그래서 연극은 힘든 길이다. 오직 사람인 배우가 유일한 표현 도구인 자기 육체를 소비해서 뭔가를 만들어 내는 원시적인 예술이다. 그래서 배우가 공연 중에 다치거나 사고가 나면 그 공연은 막을 내려야 한다. 영화는 이미 몇십 년 전에 죽은 배우의 연기 모습도 저장이라는 기능에 의해 마주할 수 있는데. 이처럼 현대에 와서는 소멸돼야 하는 연극이 여전히 생명력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앞에서 약점으로 서술됐던 역설적이게도 라이브로 공연된다는 것이다. 라이브공연은 의도치 않게 많은 실수를 동반한다. 가장 흔한 실수는 배우가 무대 위에서 대사를 망각하는 것이다. 최소 두 달 이상의 연습을 통해 완벽하게 암기를 해서 무대에 오르지만, 가끔 자기 대사가 생각이 나지 않는 경우가 있다. 이때 배우는 관객이 눈치채지 못하게 임기응변의 대사를 만들어 내서 위기를 모면한다. 어떤 경우는 공연 중에 예기치 못하게 사고가 발생하기도 한다. 다음 장으로 바뀌거나 무대장치를 변환할 때 조명을 끄는 것을 암전이라고 하는데 이때 퇴장하다가 무대장치에 얼굴이나 머리를 부딪치는 경우가 가끔 발생하는데 이때 배우는 아파도 소리를 지르지도 못하고 참거나 밝은 조명 밑에서 연기 중에도 결투장면 같은 데서 부상을 입기도 한다. 이런 실수들이 사람들이 살아가면서 현실 속에서 맞이하는 것과 유사성이 많아서 관객은 극장에 찾는 것이다. 그래서 누군가가 말했다. ‘인생은 연극이다’라고. 배우는 극장이라는 인생의 길 위에 서 있고 우리는 현실이라는 인생의 길 위에 있는 것이다.

지난 몇 달 동안 우리 국민은 마치 길잃은 양처럼 어디로 갈지를 모르는 미로의 길 위에 서 있었다. 마치 무대 위의 배우가 암전에서 길을 잃고 깨지고 부딪혀도 소리도 지르지 못하듯이 어두운 길 위에 있었다. 작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가수 밥 딜런이 선정돼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한 적이 있었다. 밥 딜런은 노벨문학상 시상식에 직접 참석하는 대신 스웨덴 한림원에 편지를 보냈다. 밥 딜런은 “노벨상 수상 가능성에 대해서는 달에 서 있다는 것”과 같은 정도의 놀라운 이야기로 생각했다“면서 “노벨문학상 수상이라는 이 놀라운 뉴스를 들었을 때 저는 길 위에 있었습니다”라고 했다. 하루라도 빨리 밥 딜런이 길 위에서 들은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처럼 우리 국민에게도 소식이 오기를 기다린다. 3월 13일 이전에. 그래서 모두가 이제는 피곤한 길 위에서 내려오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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