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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스포는 스포일러(Spoiler)의 줄임말이다. 스포일러는 영화, 소설, 애니메이션 등의 줄거리나 내용을 예비 관객이나 독자 특히 네티즌들에게 미리 밝히는 행위 또는 그런 행위를 하는 사람을 가리킨다. 지난주에 개봉한 이병헌, 공효진, 안소희가 출연하는 영화 ‘싱글라이더(A Single Rider)’의 홍보 영상 중에는 주연 배우들이 별도로 찍은 ‘스포(스포일러) 금지 캠페인’ 영상이 있다. 영화를 보고 나면 왜 이런 캠페인 영상까지 만들었는지 잘 알 수 있다. 영화를 보고 나오자마자 “이런 영화, 이런 영화를 만드는 영화인들이 있어 참 고맙다”는 관객 평까지 올리게 되었다. 물론 영화의 스포 금지 캠페인에도 깊이 공감하고 적극적으로 동참하고자 한다.

통합진보당 해산 심판을 돌이켜 본다. 이 사건 평의 과정에서는 확인되지 않던 소문들이 무성하였다. 인터넷으로 심판 과정을 살펴본 사람이라면 이미 일부 재판관이 통합진보당의 해산에 분명히 찬성할 것을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지만 주심 재판관이나 다른 대다수 재판관이 어떤 결론을 낼지에 대하여는 전혀 예상할 수 없었다. 결과는 8:1이었고 주심 재판관은 다수의견과 같은 의견을 냈다. 확인되지 않은 여러 소문은 뜬소문으로 밝혀진 것이다.

당시, 정당의 해산에 따라 그 정당 소속의 비례대표 국회의원들이 의원직을 상실하게 된다는 것은 대다수 헌법학자의 의견이었지만 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의 국회의원직 상실 여부는 쉽지 않은 문제였다. 그런데 고 김영한 민정수석의 업무 수첩 중 2014년 12월 17일 부분에는 김기춘 전 대통령 비서실장을 가리키는 ‘(長)’아래에 “정당 해산확정, 비례대표 의원직 상실, 지역구 의원 상실 異見(이견)-所長(소장) 의견 조율 中(今日) 조정 끝나면 19日, 22日 초반”이라고 적혀 있다. 위 업무 수첩 중 2014년 12월 18일 부분에는 정당 해산을 전제로만 논의될 수 있는 ‘국가보조금 환수’ 등 해산 결정에 따른 후속 조처를 지시한 내용까지 나온다.

자료를 더듬어보니, 헌법재판소는 2014년 12월 17일 11시 40분경 정당 해산 심판에 대한 선고기일을 ‘2014년 12월 19일 10시’로 정하였다는 사실을 공개했다. 헌법재판소는 줄곧 “정당 해산 심판결과는 2014년 12월 19일 오전 10시인 선고 직전에 최종 결정되었다”고 발표했지만 위 업무 수첩에 따르면 청와대 대통령 비서실장은 이미 그 결과를 알고 있었던 것이 된다. 내부자 중에 스포일러가 존재한 것이 아니라면 도·감청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

이번 대통령 탄핵 심판 초기이던 2016년 12월 13일 헌법재판소가 “연내 대당 500만 원 상당의 최신 도·감청 방지 시설을 헌재소장실과 주심 재판관실에 설치한다. 예산이 추가로 확보되는 대로 재판관회의실에 신규 최신 도·감청 방지 시설을 설치하기로 했다.”고 발표한 것은 수긍이 가는 조치였다. 박영수 특별검사팀도 2017년 1월 23일 특검 사무실 곳곳에 도청장치와 몰래카메라가 설치되어 있는지 샅샅이 살펴보았다는 보도다.

이와 같은 철통 같은 도·감청 방지 시설에도 불구하고 재판관 외의 누군가가 평의 과정을 미리 알게 된다면 도·감청 방지시설이 무용지물이거나 아니면 내부에 스포일러가 존재하는 것이 된다. 어느 쪽에 선 사람이건 탄핵 심판의 평의 과정을 알게 된다면 그는 자기 쪽에 불이익한 결정을 할 가능성이 있는 재판관들에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어떠한 행위라도 감행하려고 할 것이다. 생각만 해도 끔찍하다. 결국, 소장 권한대행의 임기만료일에 굳이 맞추려고 하지 말고 하루라도 빨리 평의를 마쳐 결정을 선고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겨울은 비할 데 없이 엄혹하였지만 이제 어느덧 희망 가득한 봄이 우리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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