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암정
거창 월성계곡은 남덕유산에서 발원해 북상면사무소 앞에서 송계사가 원류인 갈천과 만나 수승대를 지나며 위천의 본류와 합한다.  거창의 명승지로 수승대와 금원산 일대를 꼽지만 맑고 고운 물, 바람과 시간의 손길로 빚어낸 바위, 푸르고 짙은 숲만 놓고 본다면 월성계곡은 어디에 내놓아도 손색이 없는 경승지다. 월성계곡의 대표절경은 신선이 내려왔다는 바위, 강선대다.  강선대 앞에는 운첨폭포가 운치를 더해준다. 강선대를 중심으로  200미터 위에 있는 바위는 환선대다. 신선을 맞이하는 곳이다. 아래에는 유선암이다. 세명의 신선이 이곳에서 바둑을 두고 놀았다고 한다. 덕산정과 모리재같은 정자도 있는 곳이다.
용암정 뒤쪽, 정자를 받치고 있는 거대한 바위에 용암정 글자를 새기고 붉게 채색했다.

월성계곡은  북상면 사무소 앞에서 갈천과 합류를 하게 되는데 강선대를 지나 만월당 앞에서 한 갈래가 합류지점을 앞두고 주류에서 이탈해 남쪽으로 꺾어든다. 그 물길은 행기숲과 용암정, 동계종택 앞을 지나 위천면사무소 앞에서 본류와 합쳐 위천이 되어 황강으로 간다. 행기숲과 용암정을 지나는 물길은 일종의 샛강이다.용암정은 북상면 농산리 위천의 지류, 일탈의 물길 옆에 있다. 1801년(순조1) 용암(龍巖) 임석형(林碩馨)이 조부와 선친의 뜻에 따라 조부와 선친, 자신 등 3대가 노니던 곳에 창건했다. 자신이 살던 갈계리 임씨고가에서 1.6km 떨어진 별서이다. 임석형은  학문이 높고 행실이 좋아 당대 유명인사들과 어울리며 후학을 양성했던 인물이다. 
용암정 아래를 흐르는 암반 계곡

이휘준이 1864년에 쓴 ‘용암정 중수기’에서 임석형의 인물됨을 이렇게 설명했다. "주인 처사 임공은 갈천의 방계 7세손인데 문학과 덕행이 있었고 교유하는 사람은 모두 당대의 알려진 사람들이라서 서로 보지 못한 사람이라도 또한 명성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의영달과 벼슬에는 뜻이 없고 고아하게 자연을 좋아하여 골짜기의 정자를 지을 만한 곳 중에서 선조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었다.그 중에서 가장 경치가 뛰어난 곳을 택하여 정자를 짓고 노닐며 수양할 곳으로 삼고 스스로 거기에 이름을 지었다. 자손이 대대로 지키며 그 가운데 독서를 하고 학업을 힘쓰도록 하였으며 또한 과거에 급급하지 않으면서 선조를 받들고 행실을 닦는데 힘쓰도록 하였으니, 그것이 그 가풍이었다".용암정은 1864년(고종원년)중수됐다. 이휘준이 중수기를 썼다. 중수기를 쓴 이휘준은 별시 문과에 급제한 뒤 성균관전적 사간원정언 등을 거쳐 대사성을 지냈는데  임석형의 증손인 임수학 임경집의 부탁을 받고 글을 썼다.
용암정 안에서본 바깥 풍경

용암정은 정면 세 칸 측면 두 칸에 계자난간을 둘렀으며 가운데에 방을 한 칸 두어 불을 땔수 있도록 했다. 팔작지붕 기와집이다. 용암정은 암반위에 누각형태로 지었는데 누각으로 오르는 계단은 통나무를 파서 만들었다. 정자의 앞쪽, 정자를 받드는 바위에 ‘용암정’ 글자를 암각하고 붉게 채색한 것이 눈길을 끈다. 네 개의 활주가 처마를 떠받치고 있다. 용암정을 칭하는 이름은 여럿이다. 정자 안에 걸어둔 편액만도 네 개나 된다. ‘용암정’은 행서로, ‘반선헌(伴仙軒)’ ‘창원문(廳猿門)’ ‘환학란(喚鶴欄)’은 전서로 썼다. 용암정은 임석형의 호를 따 지었다. 반선헌은 용암정 위쪽에 있는 ‘가선정’과 짝을 이루는 정자라는 뜻이다. 가선정은 임석형의 7대 방계 윗대 갈천 임훈을 기려 지은 정자다. 청원문은 ‘원숭이 소리를 듣는다’는 뜻인데 정자의 서쪽에 금원산이 있으므로 그렇게 지었다. 환학란은 남쪽 물가에 학담(鶴潭)이 있으므로 학을 부른다는 뜻으로 이름했다.
용암정은 아름 다운 계곡과 바위 등으로 명승 제88호로 지정됐다.

임석형은 정자 안에 네 개의 편액을 걸어두고 편액마다 시를 남겼다. "태고적 반석에 터를 열어 뜨락 삼아 / 3대를 경영하여 이 정자를 지었네/ 좋은 자리 물과 돌은 하늘의 솜씨요/ 별천지 자욱한 안개 신비한 모습이라(중략) 누가 내 마음의 즐거움을 알리오/ 제일 강산 빗장하고 높이 누워있음을"(용암정운). "남쪽을 서성이며 높은 난간에 기대니/ 학은 가고 못은 비어 물만 절로 차갑네/ 어느 하늘에서 소리들릴까 이제 뵈지 않네 / 아이를 불러서 멀리 흰구름 끝을 가리키네"(환학루).새로 높은 정자 짓고 이 문도 달아/ 일어나 서산 보니 곧 금원이로다/지팡이 짚고 서성이며 귀를 기울이니/ 고요한 가운데 소리만 시끄럽다(청원문). "강선대는 용암헌 위에 멀리 있어도/ 오히려 당시에 신선된 헌원이 생각나/ 이 곳에 혹시라도 학 탄 손님 오신다면/ 시를 논하고 술 마시며 자연에서 늙으리라"(반선문)
▲ 용암정은 용암 임석형이 위천 계곡 옆 암반 위에 지은 정자다.

용암정은 경상남도 문화재 자료 제253호로 지정된 뒤 아름다운 경관 덕에 2012년 명승 제88호 지정됐다. 정자는 기암절벽 위에 세워졌고 정자 아래 계곡은 암반이다. 암반위를 흐르는 물은 맑고 투명하며 물이 닿지 않은 하얀 반석에는 햇살에 반사돼 눈부시다. 암반은 울주 작천정 앞의 암반에서 보듯 술잔 모양의 둥근 웅덩이 파진 것도 있다. 울퉁불퉁 동물의 형상을 한 것도 있다. 바위가 만물상이다.이 모두 물과 바람과 세월의 손길로 빚어낸 것이다. 정자의 주인 임석형은 ‘용암정 창건기’에서 당시의 풍광을 이렇게 적고 있다."정자의 기초는 모두가 바위이다. 깊고 넓게 퍼진 것도 바위이고, 층층이 상하가 같이 쌓여진 것도 바위다. 혹은 거북같이 머리를 든 것도 있고 혹은 자라같이 잠긴 것도 있다. 병풍같고 우산같고 도장같은 바위, 사자같고 용같고 토끼같은 돌들이 정자의 좌우로 흩어져서 기암괴석을 이루고 있다. 정자 윗부분에는 또 열 길이 넘는 높은 대가 있는데 이것도 모두 바위이다. 어찌 이렇게 많은 기암괴석이 이곳에 모여 기초도 되고 대도 되었을까? 위수(渭水)는 으로 흐르고, 갈계(葛溪)는 서쪽으로 쏟아져 선인정, 즉 용암정 아래에 모인다. 길게 흐르며 누운 폭포도 되고 휘돌아 웅덩이를 이룬 곳도 있으나, 그 근원은 어디서 오는건지 그 흐름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가 없어 신비하기만 하다" 라고 표현하였다.
용암정편액, 임석형이 자신의 호를 따 지었다.

용암정 일대의 아름다운 경관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것이 용암팔영(龍巖八詠)이다. 제1경은 성령명월(城嶺明月)이다. 서쪽 성령산(380m)의 맑은 달이다.. 제2경은 금원청풍(金猿晴嵐), 남서쪽 금원산(1,353m)의 맑은 바람이 용암의 자랑이었다. 제3경은 위천야우(渭川夜雨)로 위천에 내리는 밤비를 꼽았다. 제4경은 농산마을의 저녁 무렵 연기,농산모연(農山暮煙)이다.덕유산의 새벽노을.덕유효하(德裕曉霞)는 제5경. 제6경은 종산부운(鍾山浮雲)으로 서쪽 종산 하늘에 떠 있는 구름, 일곱번째는 석문노송(石門老松)으로 석문 앞의 노송, 마지막 8경은 황강조일(黃崗朝日)로 동쪽 황악산(일명 호음산)에서 떠오르는 아침 해다.
▲ 정자로 오르는 계단은 통나무로 만들어 자연미를 최대한 살렸다.

경승지 어디에나 그렇듯이 용암정 주변에도 전해오는 이야기가 풍성하다. 용암정 아래 계곡은 치내려오는 물과 이를 가로 막는 반석이 부딪히면서 넓은 소가 만들어지는데 ‘용소’다.  두 마리의 용이 있었다. 용은 돌담에서 천년, 흙에서 천년, 물에서 천년을 살아야 득천해서 용이 된다고 한다. 단 절대 사람의 눈에 띄지 말아야 한다. 한 마리는 용이 되어 하늘로 올라갔다. 나머지 한 마리는 하늘로 오르는 중 사람이 봐 버렸다.삼천년 공든탑이 무너진 용이 처절한 울음소리를 내며 떨어져 죽어버렸다. 용이 오르다가 떨어진 자리는 소가 됐다. 이무기를 본 사람도 시름시름 앓다가 죽었다.

▲ 김동완 자유기고가
용암정 바로 위에 냇물 가운데 소나무가 빽빽이 들어선 숲이 있는데 ‘행기숲’이다. 이곳은 백제무왕이 왕자시절 신라로 가서 서동요를 퍼뜨리고 선화공주를 데리고 백제로 돌아오던 중 아름다운 경관에 반해 며칠 머물다 갔다는 이야기가 전해지는 곳이다. 선화공주가 이곳에서 목욕을 하다가 손에 낀 가락지를 잃어버렸다고도 한다.이 숲은 해인정(解印亭)이라고도 한다. 신라말기에 신라의 사신이 후백제의 구원을 청하기 위해 후백제 땅으로 가던 중 이곳에서 경순왕이 왕건에게 나라를 넘겼다는 소식을 들었다고 한다. 그는 충격에 빠져 신라의 사신임을 입증하는 신표인장을 버리고 종적을 감췄다. 해인정은 인장을 싼 보따리를 풀었다는 뜻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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