終日看山不厭山 (종일간산불염산·온종일 산을 보아도 산이 싫지 않아)
買山終待老山間 (매산종대노산간·산을 사서 마침내 산속에서 늙는다)
山花落盡山常在 (산화락진산상재·산의 꽃이 다 떨어져도 산은 늘 그대로이고)
山水空留山自閑 (산수공류산자한·산골 물은 부질없이 흘러도 산은 스스로 한가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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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진태 전 검찰총장
이 시는 강소성 남경 북쪽에 있는 종산(鐘山)을 노래한 것으로, 왕안석이 구당파에 대한 오랜 원한의 감정을 씻어 버린 후의 느낌을 읊고 있다.
구당파와 대립하며 가슴속에 쌓인 은한(恩恨)도 세월의 흐름 속에 침식과 풍화를 계속하며 결국 사라지는 것임을 산을 빌려 읊은 것이다. 자연에 동화됨으로써 은한을 모두 버려 자유로워진 자신을 보여 주는 시라고 할 수 있다.
우리의 인생 역시 이러하다. 사바세계에 중생으로 사는 이상 아등바등해야 할 때도 있다. 그렇지만 그런 때에도 아등바등하는 것이 결국은 공(空)임을 어렴풋하게라도 느끼면서 아등바등해야 나중에 덜 처량하고 덜 후회할 것이다.


왕안석은 중국 북송의 정치가이자 학자로 자는 개보(介甫), 호는 반산(半山)이다. 그는 21세에 진사가 되었으며 신종(神宗)이 그를 발탁하면서 당시로써는 세상을 놀라게 한 다양한 개혁 정책을 시행했다. 그의 개혁 정책은 간략하게 말하자면 대상인과 대지주의 횡포를 막아 농민과 중소 상인을 보호하여 민생을 안정시키고 세수를 늘려 나라를 부강하게 하는 것을 목적으로 했다. 그러나 대상인과 대지주가 누구인가. 유사 이래로 그들을 제대로 제어한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왕안석의 신법은 이들의 반발로 인해 제대로 시행되지도 못하고 정쟁의 대상이 되었다가 신종도 가고 왕안석도 서거하면서 폐지되고 말았다.


왕안석의 신법 개혁은 당시로는 파격적인 시도였는데, 과연 이것이 북송 왕조의 수명을 연장했느냐 아니면 단축했느냐를 두고도 논란이 이어졌다. 이 개혁의 실패에는 여러 요인이 있지만, 결정적인 것 중 하나는 법을 집행하는 관리들의 부족한 자질과 무성의로 인해 민심의 지지와 호응을 얻지 못했다는 점을 먼저 들 수밖에 없을 것이다.

이렇듯 그의 개혁 정책은 보수파에 의해 매도되었지만, 그의 우아하고 유려한 문장은 정적도 인정할 만큼 뛰어나 당송 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꼽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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