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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호 호서대교수 법학박사
중세 말에 학생이나 교사의 모임인 길드에서 시작된 대학들이 오늘날까지 면면히 이어지면서 학문을 계승 발전시켜 왔다. 덕분에 우리는 중세 시대 눈으로는 도저히 볼 수 없었던 빛과 진리의 신적(神的) 세계까지 경험할 수 있다. 첨단기술과 과학의 도움으로 물질적, 가시적, 감각적으로 지상의 세계에 드러난 신현(神顯)을 체험할 수도 있다. 대학과 같은 지식공동체 구성원들의 끊임없는 지적탐구의 결과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지식이 창조적 능력으로 평가받지 못하고 저가 기성품 혹은 재고품으로 취급된다.

올해 대선이 예정되어 있다. 예비주자마다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4차 산업을 외친다. 1차 산업 정치종사자가 4차 산업을 이끌겠다니 실소를 금할 수 없다. 인류의 진보는 연구자들의 치열한 탐구활동에 힘입은 바 크다. 지적 호기심, 역동성, 새로운 문물에 대한 개방적 태도 이런 것들이 4차 산업을 이끌 것이다. 광장의 광기(狂氣)와 거기에 편승한 1차 산업 종사자 식충(食蟲)이 정치가들의 구호로는 어림도 없다. 사람들의 약속으로 형성된 합리적 상징체계와는 전혀 어울리지 않은 한국의 정치 현실 때문이다.

학문의 역사를 두 개만 반추해 보자. 연금술은 화학이 되었고, 점성술은 천체물리학이 되었다. 한국의 정치인들로는 이런 변화를 기대할 수 없다. 저마다 공짜 밥을 주겠다는 공약을 내걸고 있는데 무얼 기대한단 말인가? 국민은 밥벌레가 아니다. 실현이 가능한 교육 개혁안을 제시하라. 사교육이 문제가 아니고 입시제도가 문제가 아니다. 교육의 실질이 문제이다. 우리 과학교육 현장을 보자. 사과는 빨갛고 둥글다고만 가르친다. 여기서 끝이다. 학생도 교사도 더 이상 고민을 하지 않는다. 한 세대 전 박물관 수장고에 들어가야 할 지식의 전달을 교육으로 알고 있다. 그러니 더 이상 혁신을 기대할 수 없다. 왜 우리는 사과를 두 쪽으로 쪼개어 핵의 모양과 씨앗의 개수와 과육의 구성성분을 분석하라고 교육하지 않는가?

매체과학, 상징자본론, 취향 사회학 등 쉴 새 없이 새로운 영역을 구축해가는 것이 오늘날 세계의 지식경쟁 현장이다. 도시, 공해, 디자인, 영화, 음식, 천체, 미생물, 사이버네틱스, 유전자, 기후 등 전 분야에 걸쳐 무불통지가 필요하다. 청년에게 돈이나 나눠주겠다는 밥벌레들의 공약(空約)으로는 미래를 기대할 수 없다. 대상에 대한 인식과 초월이 인간과 자연과 우주로 향해야 한다. 학생들 입맛에 맞추는 시류 교육은 반문화이다. 우리 모두를 종말로 이끌 뿐이다. 둘만 낳아 잘 기르자? 인류의 개체 수를 줄이지 않으면 지옥이 펼쳐질 거라던 반세기 전 보건사회부 구호가 출산율의 급전직하로 역전되었다. 많은 사람이 SNS에 자신의 소소한 일상을 올리며 팔로워들로부터 ‘좋아요’를 기다린다. 이런 상황에서는 결코 4차 산업과 미래 먹거리와 청년 일자리와 출산율은 해결이 안 된다.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 알타미라 벽화가 세상(미술사학계)에 알려지기 전까지는 이를 알리는 것은 신성모독이라고 비난하고 멸시하였다. 그러나 금기는 깨졌다. 다빈치처럼 천재성을, 고흐처럼 비극을, 피카소처럼 괴짜를 교육에서 발현시켜야 4차 산업이 가능하다. 진보하고 살아남기 위해 범상치 않아야 한다. 런던의 트라팔카(Trafalgar) 광장은 천재와 괴짜들을 많이 만나볼 수 있는 공간이다. 대개 막대기 하나를 짚고서 마술을 선보여 행인의 눈길을 끈다. 이 광장은 정치연설을 하는 사람도 많다. 서울 광화문처럼 주말에는 다양한 정치집회도 열린다. 그러나 런더너들은 여기서 맑은 밤하늘의 오로라가 피어나는 창조적인 삶을 꿈 군다. 우리의 함성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트라팔카는 내게 법이란 허위의 재판에서 정의를 구하는 것이 아니라 규칙을 따르는 게임이라고 속삭인다. 헌재의 결정이 광화문의 광기를 잠재우고 4차 산업의 문을 활짝 열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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