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4년 미국에서 말세론을 믿는 어느 종교단체 이야기다. 그 종교단체 신도들은 교주의 예언에 따라 직장과 가족을 떠나 한자리에 모였다. 곧 다가올 말세에서 그들만을 구해줄 비행접시 출현을 기다리기 위해서였다. 교주가 예언한 지구멸망은 일어나지 않았고, 비행접시도 나타나지 않았다. 일부 신도들은 자신들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그곳을 떠났지만 교주 곁에 남아 그 자리를 지킨 신도들은 말세론에 대한 믿음이 더 강해졌다. 교주의 예언이 들어맞지 않은 것은 그들의 신앙을 하나님이 시험하는 것이라고 믿었던 것이다.

1992년 한국에서도 기독교 일부 교파에서 신자들이 ‘휴거파동’을 일으켜 화제가 됐다. 그들이 휴거일이라고 굳게 믿었던 그날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다. 그 믿음을 버린 신자들도 있었지만 여전히 그 믿음을 버리지 않은 신자들도 많았다. 그들은 기존의 믿음을 더 강화했다. 휴거일 산정에 오류가 있었을 뿐 더욱 열심히 기도하면 휴거를 맞이한다는 강한 믿음을 깊게 다졌다.

한번 받아들인 믿음에 반하는 확실한 증거가 나타나면 그 믿음을 고쳐 심리적 조화를 이루려고 하기보다는 그 증거를 부인함으로써 부조화를 없애려고 한다. 이 같은 심리상태를 미국의 심리학자 레온 페스팅거는 ‘인지부조화(認知不調和·cognitive dissonance)’라고 했다. 한번 좋게 보면 끝까지 좋게 보고, 한번 밉게 보면 끝까지 밉게 보는 경향도 ‘인지부조화’ 때문이라 한다.

사이비 종교 광신자들의 교주에 대한 맹신도 인지부조화가 저변에 깔려 있다. 김대중, 노무현 정부에서 통일부 장관을 지냈고, 지금은 문재인 대선주자의 국정자문단 ‘10년의 힘 위원회’ 공동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세현 전 장관이 김정은의 김정남 독살에 대해 “권력의 속성상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해 물의를 빚었다. “정치적 경쟁자는 제거하는 것이 권력 입장에서는 불가피한 일”이란 말도 덧붙였다. 김정은의 만행을 이해할 수 있다는 취지로 들렸다.

정세현 전 장관은 자기 생각만을 맹신하는 ‘인지부조화’ 늪에 빠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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