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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미국 시애틀에 사는 어느 노동자가 한결 여유가 생긴 자신의 삶에 대하여 이야기한다. CEO의 연봉인상 결정으로 임금이 50% 가까이 인상된 그는 직장과 가까운 곳으로 집을 이사할 수 있게 되어 출퇴근 시간이 줄어들었고 경제적 여유까지 생기게 되어 이제는 직접 집에서 요리하거나 음악 레슨을 받는 등 여가 생활을 즐길 수 있게 되었다고 자랑한다. 이제, 미국의 그래비티 페이먼츠(Gravity Payments)라는 회사의 CEO 댄 프라이스(Dan Price) 가한 일을 보자. 그는 2015년 4월 13일, 그해 12월부터 직원들의 최저임금을 6만 불로 조정하고, 2016년 12월부터는 이를 7만 불로 조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를 위하여 (한시적으로) 자신의 연봉을 최저임금에 맞추겠다는 약속도 했다. 당시 댄 프라이스의 연봉은 110만 불이었고 그 회사 직원들의 평균 임금은 5만 불, 임금 최저자의 연봉은 3만2천 불이었다고 한다. 그는 문득 자신이 얼마 전 자신의 친구에게 응분의 임금을 지급하지 않는다며 친구와 함께 욕하던 친구의 고용주와 자기 자신이 다를 것이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되어 갑자기 위와 같은 파격적인 결정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댄 프라이스의 결정을 걱정하는 사람들은 앞으로 그 회사 근로자들은 놀고먹으려고 하게 될 것이 뻔하니 회사는 머지않아 망하고 말 것이라고 악담을 퍼붓기도 하였다. 그들 말대로라면 결국은 댄 프라이스는 회사를 망하게 하여 직원들이 모두 직장을 잃게 한 CEO로 기억되고 말 것이라는 저주였다. 실제로 위와 같은 파격적 최저 임금 인상 초기에 고위직 직원들이 반발하며 퇴사하였고 거래처가 일시 줄어드는 등의 단기적인 부작용이 있었다고 한다. 이때 그를 사회주의자(우리 식으로 말하면 ‘종북’이 될 듯하다)라고 비난하는 미국 종편들도 넘쳐났다고 한다.

그렇지만 댄 프라이스는 뜻을 굽히지 않았고 직원들의 신뢰를 바탕으로 회사는 그 이후 더 많은 거래처를 확보하였고 이익은 증가하였으며 직원들의 이직률은 역대 최저를 기록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임금인상 소식이 전해진 후에 회사에는 작은 베이비붐도 생겨나 근로자 중 새로 아이를 가진 직원들도 매우 많았다고 한다. 직원들이 댄 프라이스 모르게 10개월에 걸쳐 비밀리에 갹출한 돈으로 직접 구입한 테슬라 자동차를 써프라이즈 선물로 받은 사장 댄 프라이스가 눈물을 흘리면서 감격해 하는 모습은 지금도 유튜브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30~40년 전, 우리는 지금보다 매우 가난하였지만, 당시 어느 가정이든 평균 5인 구성원인 가족 중 가장인 아버지만 나가서 일하였고, 그 아버지의 수입으로 온 가족이 생계를 꾸릴 수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가장뿐만 아니라 가족 구성원들이 정규, 비정규직으로 모두 일하더라도 폭증한 주거비, 교육비 등으로 미래를 설계하기 힘든 세상이 되고 말았다. 2017년 최저임금은 2016년에 비하여 단 440원이 올라 6천470 원이다.

댄 프라이스는 공산주의자나 사회주의자가 아닐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을 위하여 희생하는 삶을 살기로 마음먹은 성인(聖人)도 아니다. 그는 사내 최저 임금을 파격적으로 올린 것은 이것이 결국 회사 및 자신에게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이었다고 고백한다. 최저 임금의 파격적 인상이 이타적인 행동이 아니라 다른 종류의 이기적인 행동이며, 더 안정적인 이윤추구를 확보하기 위한 기업가정신의 발현이었을 뿐이었다는 것이다. 댄 프라이스의 혜안(慧眼)에 박수를 보낸다. 소득 격차 해소를 통하여 개개의 구성원들을 행복하게 만드는 일이 결국 그 구성원들이 만드는 사회(조직)까지 안정적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그의 믿음에 뜨겁게 공감한다. 나눔으로써 더 커지게 되는 것, 이것이 결국 우리 인류가 가야 할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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