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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종호 호서대 교수 법학박사
우리가 만든 국가는 다양한 가치나 주장이 인정되는 다원화된 민주주의 사회이다. 그러나 다양한 가치도 일정한 순위가 있고 그 주장도 나름대로 정해진 절차에 따라 표출돼야 지지를 받고 생명력을 얻는다. 그동안 대한민국 사회를 뒤흔든 탄핵요구는 문명과 야만의 갈림길이었다. 오늘 헌재 결정은 대통령 탄핵을 둘러싸고 벌어진 소용돌이에 마침표를 찍었다. 탄핵정국을 지켜보면서 깊은 우려와 함께 씁쓸한 뒷맛을 남기는 것은 필자만의 생각일까? 사태는 이른바 촛불 위세에 억눌린 국회의 탄핵소추 발의에서 시작되었고 헌재의 결정으로 오늘 일단락되었다. 오늘 헌재의 결정은 한국판 도편추방제(陶片追放制)로 읽힐 수 있다. 고대 그리스 아테네에서 민주정을 유지하기 위해 민회(民會)에서 실시한 참주(僭主) 추방제와 비슷한 모양새로 보인다. 물론 도편추방제(ostracism)가 원래 의도와는 달리 정적 배제 수단으로 이용되어 페리클레스의 사후 중우(衆愚)정치에 질린 아테네인들이 자발적으로 이 제도를 폐지했다. 헌재 결정으로 갈등이 우려된다. 하지만 더 이상 대립이 증폭돼서는 안 된다.

우선 우리가 지켜야 할 가치의 순위에 관한 관점에서 보면 헌재의 결정이 무시되면 그것 자체로 민주주의가 부정되는 것이다. 반드시 헌재의 결정은 존중되고 지켜져야 한다. 왜냐하면, 법치주의, 권력분립, 사법권의 독립 등은 민주주의 기둥이요 그 어떤 가치보다 훨씬 더 상위가치이기 때문이다. 만일 헌재의 결정을 무시하고 다시 저항한다면 이는 결국 국가를 부정하는 것이다. 헌재는 한낱 종이 집에 불과하고 법치주의나 권력분립은 하루아침에 무너지게 된다. 우리의 민주주의를 절대군주 시대로 후퇴시켜서는 안 된다.

헌재 스스로 밝혔듯이 이번 결정은 역사적 재판이요 국민의 심판이었다. 헌재의 준엄한 명령은 누구의 승패도 아니고 우리 모두의 반성 장이었다. 이제 헌재 결정을 뒤로하고 우리의 정치와 경제와 사회를 통합의 장 그리고 축제의 장으로 전환시켜야 한다. 정치인들의 사명이 크다. 사실 대통령 탄핵사태는 비단 대통령 혼자만의 책임이라기보다는 정치권 모두의 책임이다. 오늘 헌재의 결정은 역사발전 과정에서 나타난 진통의 가장 극적인 모멘텀이다. 헌재의 명령에 복종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 자체가 헌법질서를 유린하는 것이다.

만일 헌재 결정에 불만인 사람들이나 세력이 그 판단을 무시하는 행위를 벌인다면 법치주의는 한순간에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촛불이 승리했다며 우쭐해 할 필요도 없다. 어떤 현상이 벌어지겠는가? 이 또한 상상해서는 안 될 사태이다. 국회는 대통령의 행위가 국회가 제정한 법률과 국민의 결단인 헌법에 위반된다고 헌재에게 판단을 요청하였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우리 모두는 한국사 최초로 명예혁명이라는 결과를 이루어 냈다. 이것이 민주주의 시스템인 것이다. 사건의 결론을 도출해야 하는 재판관들의 고뇌가 깊었을 것이다. 만장일치로 의견을 내린 것은 다원성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섭섭할 수도 있겠지만, 오히려 반대로 의견이 갈렸다면 재판 결과에 대한 수용거부나 재판부를 비난하는 행위를 넘어 상상할 수 없는 끔찍한 일이 벌어질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점을 우려해 갈라진 국론을 통합하기 위한 조치로 이해하고 싶다.

헌재의 결정은 신중했으며 최종적이고 종국적인 처분이다. 선고는 누구도 불복할 수 없으며 돌이킬 수 없는 이른바 비가역적인 사건이다. 이론적으로야 재심이 가능할지 몰라도 헌재의 결정이 가처분이 아니며 일시적이고 잠정적인 처분도 아니다. 그렇다면 이의나 상소 등을 통한 불복절차가 남아있지도 않다. 그런데 선고되자마자 헌재의 결정을 헌신짝처럼 내팽개치는 사태는 막아야 한다. 필자는 결정의 당부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다. 대통령의 잘잘못도 쟁점이 아니다. 탄핵을 명한 사법부의 결정에 불복하거나 혼란을 일으킬 여지를 우려함이다.

헌재의 논리는 파면하지 않음으로써 얻을 이익이 파면으로 얻을 이익보다 적다고 하였다. 그동안 세월호 사건과 탄핵 등 정치적 논쟁에 많은 국력을 낭비했다. 이제 치유와 화해의 과정이 필요하다. 이번 사건을 역사의 한 장면으로 남기고 새로운 장을 열어야 한다. 곧 새로운 권력이 등장할 것이다. 한반도를 둘러싼 극동의 위기가 촛불처럼 깜박거리고 있다. 씻김굿은 끝났다. 이제 정치인은 의사당으로 돌아가라. 경찰은 청사로, 시민들은 가정으로, 학생과 교사는 강의실로, 근로자는 일터로, 모두가 일상의 제자리로 돌아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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