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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가] 41. 안동 예안이씨 충효당

오종명 기자 ojm2171@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3월12일 20시12분  
충효당 본채
△ 영화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의 배경 충효당

안동시 풍산읍 하리리 산 중턱에는 예안 이씨 충효당이 자리 잡고 있다. 이 집에서는 임진왜란 당시 의병장으로 순국했던 풍은 이홍인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고 있다.

건물 자체가 보물(553호)로 지정돼 있는 이 집은 일반에게는‘예안 이씨 충효당 종가’로 잘 알려져 있다.

충효당은 임진왜란 때 순국한 충신 이홍인 (1525~1594)과 그 9대손 이한오 (1719~1793)의 효행을 기려 이름이 붙여졌다. 한 가문에 임금이 두 개의 정려(旌閭)를 내리고 포상을 하는 충효의 가문은 흔치 않다.

이 집은 최근 70년 이상 종가를 지탱해 온 90대 노모와 70대 아들의 효심을 잔잔한 감동으로 담아낸 화제의 영화 ‘나의 아들, 나의 어머니’의 배경이자 주인공이 살고 있는 곳이다.

충효당의 17대 종손 이준교(74) 씨는 중앙경제신문, 중앙일보 등에서 30여 년 이상 몸담아 온 언론인 출신이다. 그의 마지막 직함은 삼성문화재단 문화사업실장이었다. 그가 서울생활을 정리하고 고향에 내려오게 된 계기는 그의 어머니 때문이었다.

그는 “20대 중반에 남편을 잃은 어머니는 한평생 자식을 키우면서 충효당 지키기에 온 삶을 다 바친 어머니를 고향에 돌아와 모시고 산 줄 알았으나 어머니가 누우시고 나니 나는 여전히 어매 앞에서 어리광만 부리고 있었구나”라고 회고했다.

그는 모친 별세 후에도 서울로 돌아가지 않고 그대로 종택을 지키며 살겠다고 밝혔다.

생전에 노모와 칠순 아들의 모습


△ 충과 효, 형제애 유적 남긴 종가사람들

풍산읍 풍산장터에는 정충각과 정효각이 있다. 충은 임진왜란 때 칠순의 노구를 이끌고 의병을 모아 풍천 구담에서 싸우다 전장에서 순국한 이홍인 선생의 뜻을 기린 것이다.

이홍인의 본관은 예안, 자는 경회(景會), 호는 풍은(豊隱)이다. 기록에 의하면 안동은 임진왜란의 상처를 입지 않았다 한다. 안동 하회마을이 그렇고 퇴계 선생의 강학 공간이 그러했다. 원인은 그 중심에 예안 이씨 충효당의 중심 인물인 풍은 이홍인이 있었기 때문이다.

효행으로 나라에서 정려가 내려진 조선 순조 때의 용눌재 이한오는 병상에 계신 아버지가 꿩고기가 먹고 싶다고 하자 추운 겨울에 꿩고기를 찾아 산천을 헤매던 어느 날 지친 그분 앞에 꿩 한 마리가 떨어져 죽었다고 한다.

또 하루는 잉어를 먹고 싶어 하는 부친을 위해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오다가 호랑이를 만났으나 용눌재는 “잉어는 안된다. 어른을 드리고 다시 올테니 기다려라”며 자신의 몸을 주겠다고 약속하고 돌아서자 호랑이도 탄복해서 사라졌다는 현대에서는 믿기 어려운 일화도 전해온다.

결국 그의 지극한 효행이 전해져 순조 12년에 정려를 받았다.

풍산읍 입구에는 종손의 11대조 옥봉과 만포 형제분의 우애를 기려 지은 ‘체화정’이 있다.

이곳에는 단원 김홍도가 쓴 담락재((湛樂齋)라는 현판이 걸려 있다. 담락재는 ‘형과 아우가 함께 즐거움을 오래도록 누리라‘는 뜻의 ’화락차담(和樂且湛)‘이란 ’시경(詩經)‘의 한 구절에서 따온 말이다.



△ 예안이씨 충·효 유적들

충효당에 들어서면 별당에 쌍수당(雙修堂)이라는 현판이 게판돼 있다. 그 옆으로는 백원당(百源堂)이라는 현판도 보인다. 충과 효는 둘이면서 하나인 관계에 있다. 충과 효를 함께 닦은 집이란 의미다. 백원(百源)이란 모든 근원인 효(孝)를 말한다. 효가 백가지의 근원이 된다고 해서 쌍수당을 백원당으로 일컬었다.

풍산읍내에 가면 예안이씨정충정효각(禮安李氏旌忠旌孝閣) 정려각이 남아 있고 사도세자의 스승인 유정원(柳正源)의 글씨인 체화정, 김홍도가 그림이 아닌 글씨로 평생 두 점만 남겼다는 담락재(湛樂齋) 현판이 걸려 있는 정자들이 공원으로 꾸며져 있다.

이들 모두가 지방문화재로 보존되고 있으며 충효와 관련한 예안이씨 집안의 명예를 기린 유적들이다. 과거에는 한 집안의 영예가 마을이나 그 고장의 영예로 생각해 덕행을 함께 지키고 누렸던 것이다.

체화정


△ 노종부의 유품 ‘여자소회가’

종손은 조부로부터 종손의 덕목에 대해 관용(寬容)을 배웠다. “싸서 안으라는 가르침이 있었어요. 네 것 챙기면 안 된다. 귀에 못이 박힐 정도였지요.” 마치 어제의 일인 듯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충효당에는 대대로 전해오던 유물 유품이 도난당하고 이렇다 할 유물이 별로 없다. 평소 종손의 어머니는 조상님께 죄를 지었다고 자책하셨다고 한다.

그래도 어머니는 문단속을 하는 아들에게 사람의 집에 사람이 와야 하니 그렇게 박하게 하지 말라고 당부하는 품성을 지닌 이였다.
쌍수당, 백원당 현판이 걸린 충효당 별채

종손의 어머니는 문경에 사는 안동권씨 종가의 종녀로 태어나 18살에 시집왔다. 10여 년 후 남편과 사별하면서 4미터가 넘는 두루마리에 장문의 편지를 남겼다. 남편을 떠나보낸 후 쓸쓸함과 외로움, 그리고 아들 하나만 데리고 살아가야 할 미래에 대한 불안 등을 노래하고 있다. 평소 글씨가 곱고 문장이 출중했던 어머니는 이 가사를 마지막으로 글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

애절한 사부곡이다. 1998년 안동 인근에서 발견돼 해외에서까지 화제가 됐던‘원이 엄마의 편지’와 동기나 한글 표현 방식이 비슷하다.

애절한 이들 모자 이야기는 KBS-2TV 휴먼다큐프로그램 ‘인간극장’을 통해서도 방영된 바 있다. 또 2013년 EBS 제10회 국제다큐영화제 때 ‘오백년의 약속’이란 제목으로 상영됐다. 그 때 공개된 예고편은 백발의 노모를 휠체어에 태워 모시고 돌아가는 백발의 아들 모습으로 시작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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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종명 기자

    • 오종명 기자
  • 안동/의성 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