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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혁 대구경북녹색연합 대표
허태균 교수(고려대학교 심리학과)의 ‘어쩌다 한국인’이라는 책을 읽다가 한국 사회의 6가지 동력으로 주체성, 가족 확장성, 관계주의, 심정중심주의, 복합 유연성, 불확실성 회피에 대한 설명이 공감이 많이 되었다. 그중에서도 관계주의를 설명하면서 목차에서부터 시선을 사로잡은 것이 ‘한국적 불통의 본질’이란 내용이다.

허 교수는 특히 정부의 소통방식은 여전히 국민의 기대와는 큰 차이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며 카드사 정보유출사건, 여수 기름 유출사건, 가계부채 심각성 등의 예를 들었다. 현오석 전 경제부총리는 카드사 개인정보 유출사건이 발생했을 때 “금융소비자도 정보를 제공하는 단계에서부터 신중해야 한다. 우리가 다 정보제공에 동의해줬지 않느냐”며 카드사가 아닌 국민에게 책임을 묻는 식의 발언으로 물의를 일으켰고, 윤진숙 전 해양수산부 장관은 여수 기름 유출 사건 때 “기름 유출의 1차 피해자는 정유사, 2차 피해자는 어민이다”라는 말을 해서 비난을 받았다. 최경환 전 부총리도 가계부채의 심각성을 걱정하는 국회의원의 질문에 “빚내서 집 사라고 한 적이 없다”라는 발언 역시 언론의 집중포화를 맞았다.

이러한 예를 들면서 허 교수는 이들의 말이 기술적인 측면에서 보자면 틀리지 않았고 정보유출에서 핵심내용인 금융 회사가 다른 기관에 정보를 제공한다는 공지사항이 존재했으며, 대부분 사람이 그 서류에 동의서명을 한 것도 사실이라고 지적했다. 또 유조선이 정유사 항만시설을 들이박아서 유출 사고가 났으니 시간적으로나 물리적으로 인과관계를 따지면 1차 피해자는 정유사가 맞을 것이다.

하지만 모든 것을 고려해도 어차피 원인을 물어본 말이니 원인만 정확히 이야기하면 된다는 자기중심적 대화법에 의존한 발언 당사자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고 지적한 부분이 공감이 많이 되었다. 논란이 불거질 때마다 당사자들은 진의가 왜곡되었다며 억울해하겠지만, 결국 대화의 목적은 혼자 떠드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과 상호작용을 하는 데 목적이 있으며 상대방과 의견, 감정 등을 교환하는 것이 대화와 소통이지 단순한 정보를 전달하는 것이 소통이 아니라는 것이다.

관계주의적인 한국 사람들은 말을 말 그대로 이해하지 않고 고도로 발달된 촉과 눈치로 그 행간뿐만 아니라 여백, 표지, 뒷면 등을 모두 고려하여 별의별 생각을 다 한다고 허 교수는 지적한다. 이런 한국 사람들에게 팩트를 강조하며 책임 없이 원인만 이야기하며 소통했다고 주장하는 것은 그냥 혼잣말한 것보다도 못한 일이 될 수 있다.

20대 총선이나 최근의 국정농단사태에서 보여준 정부나 여당과 야당 정치인들의 모습은 국민의 기대와는 달라서 국민은 잘 이해할 수 없었다. 이들도 어쩌면 국민의 촉과 눈치를 외면하고 본질과 동떨어진 것들을 나열하면서 논란을 일으키는 자기중심적 대화법에 매몰되어 있었던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세월호에서 수많은 목숨을 허무하게 잃었지만, 정치인들은 과연 무엇을 했나? 아직도 정경유착에 매몰되어 있고 자기와 자신들의 세력을 위해서만 노력하는 것을 쉽게 볼 수 있다. 경제위기를 극복하는 일이나 일자리를 만드는 일, 사회 취약계층을 위한 정책, 생명과 안전을 위한 정책은 아직도 찾아보기 힘든 현실에서 국민은 좌절하고 분노한다.

진보는 무엇이고 보수는 무엇인가? 국민을 위한 가치와 정책의 방향이 진보와 보수를 구분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의 진보와 보수 모두를 가짜로 평가하는 국민의 눈이 더 정확한 것은 아닐까? 국민이 원하는 소통과 그들이 원하는 소통방식은 분명 다른 것으로 보인다. 이제 우리에게 남은 과제는 앞으로 선출될 정치지도자에게 국민이 원하는 소통방식을 지치지 않고 계속 이야기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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