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박근혜 대통령은 영국을 국빈방문했다. 국빈방문 마지막 행사로 런던시장이 주최하는 만찬에 참석하게 됐다. 600년 역사가 스며 있는 ‘길드홀’에 한국과 영국의 주요 경제인 650여 명도 참석했다. 짙은 남색 한복차림의 박 대통령이 만찬장에 도착해 차에서 내렸다. 그때 치마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런던시장을 비롯, 영접하던 사람들이 깜짝 몰라 어찌할 바를 몰랐다.

박 대통령은 낭패스러운 자신의 실수를 환한 웃음과 간단한 말 한마디로 주위 사람들에게 잔잔한 웃음을 선사했다. ‘드라마틱 엔트리(Dramatic Entry: 극적인 입장)’ 한마디였다. 그리고 만찬을 마치고 퇴장할 때 ‘콰이어트 엑시트(Quiet Exit: 조용한 퇴장)’라고 말해 좌중을 또 한번 미소 짓게 했다. “입장할 때는 드라마틱 했지만 나갈 때는 조용히 나가겠다”는 유머스러운 재치로 실수의 마무리를 멋지게 장식했던 것이다.

2006년 5월 지방선거 유세 중 커터칼 테러로 수술을 받고 깨어나서 한 첫마디가 ‘대전은요’였다. 선거 여왕의 내공을 과시한 이 말 한마디로 선거 판세를 뒤집었다. 이보다 한참 앞선 1979년 10월 박정희 전 대통령 서거 소식을 접하고선 “전방에는 이상 없습니까” 첫마디는 지금도 회자되고 있다. 2007년 1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개헌을 통한 권력구조 개편을 제안하자 “참 나쁜 대통령이다” 한마디로 제안을 제압해버렸다. 2008년 총선에서 친박계 의원이 무더기 탈락한 한나라당 공천결과를 비판 “나도 속고 국민도 속았다”는 일갈은 아직도 국민 뇌리에 깊이 박혀 있다.

박근혜 전 대통령의 화법은 신문사 편집기자들이 좋아한다. 간결하면서도 핵심을 찌르는 촌철살인은 신문기사 제목으로 안성맞춤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박 전 대통령의 정제되고 강력한 의미를 갖는 응축된 단답형 화법은 어려서부터 훈련됐다. 모친 육영수 여사로부터 받은 정제된 언어구사 교육의 영향이 크다고 한다. 정치인의 최고 무기는 말이다. 정제된 촌철살인으로 국민의 심금을 울리고 국민의 마음을 살만큼 반듯한 이미지의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의 농단에 장단 맞췄는지 참으로 미스터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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