압동초유지재(鴨東初有之才). 석파 흥선대원군이 석재 서병오에게 건넨 글귀다. ‘압록강 동쪽에서 처음 난 인재’라는 뜻으로 1879년 석파가 친히 비단에 적어 주었다. 석재 서병오(1862~1936)를 두고 ‘세기의 위재(偉才)’라 하고, ‘팔능거사(八能居士)’라 부르기도 한다. 대구 출신의 석재는 한양에서까지 명성이 파다할 정도로 시서화에 능력이 뛰어났다.

대원군은 석재가 18세 되던 해 운현궁으로 불러들여 오랫동안 함께 생활했다. 석파는 석재에게 직접 시서화를 가르쳤으며, 또 운현궁 생활을 통해 한양의 유명 인사들과 어울리며 인맥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었다. 석재는 시서화(詩書畵)에 모두 뛰어난 삼절(三絶)의 천재 문인화가였다. 그의 시를 아는 사람은 시서화중 시가 가장 으뜸이라 하고, 문인화를 아는 사람은 그의 문인화가 추사에 견줄만 하다 하고, 서예에 눈을 둔 사람은 호방하고 소박한 서예 또한 비교 대상이 없을 정도라 평한다. 이뿐 아니라 석재는 거문고와 바둑, 장기, 의술, 언변에도 뛰어나 ‘팔능거사’로도 불렸다. 1907년 국채보상운동에도 적극 참여한 애국지사이기도 하다.

석재는 무엇보다 걸출한 화가들을 많이 배출한 대구의 전통 화단을 일으킨 선구자다. 1920년대 들어 서울의 화단 외에 평양이나 호남 등지에서 지역 화단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때 석재가 영남지역의 중심 화단인 대구 화단을 처음 일궜다. 다른 화단들이 산수화 중심이었다면 영남화단은 선비정신의 상징인 사군자화가 중심이었다. 석재는 대구미술의 모태인 ‘교남시서화연구회’를 설립했다. 이 연구회는 시서화 강습소를 열고, 전시회와 경연회를 개최하는 등 인재를 길러내는데 힘을 쏟았다.

대구미술관이 대구가 낳은 천재 문인화가 석재 서병오 작품전을 열고 있다. 대구미술의 선구자인 석재의 업적을 기려 전시회 이름을 ‘대구미술을 열다 : 석재 서병오전(展)’으로 했다. 오는 5월 14일까지 그의 작품 100여 점과 관련 자료 40여 점을 4·5전시실에서 전시한다. 기관이나 개인이 소장 하고 있던 석재의 작품을 오롯이 한 곳에 모은 미술과 쿠레이터들의 노고가 느껴진다. 봄과 함께 놓치지 말아야 할 전시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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