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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정한 변호사
조르주 페렉(Georges Perec)은 1936년 파리에서 태어난 소설가, 비평가, 영화제작자다. ‘사물들(Les choses)’은 그가 1965년에 발표한 데뷔작이자 그의 출세작이다. 그는 실비와 제롬이라는 남녀 주인공이 살아가고 있던 1960년대 프랑스의 사회상을 압축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실비와 제롬은 파리 거리마다 넘쳐나는 물건들을 동경하고 그것을 소비하는 것을 목표로 한 듯이 살아간다. 새로운 핸드폰이 출시되면 멀쩡하던 핸드폰을 버리고 싶고, 날렵한 곡선의 신차 광고가 나오면 잘 타고 다니면 자신의 차를 바꾸고 싶어 하는 우리 모습이다. 실비와 제롬은 벼룩시장에서 명품을 구입하게 되는 것을 큰 행운으로 여겨 시장을 헤매고 다닌다. 우리 사회에서도 중고 명품에 대한 꾸준한 수요가 확인된다. 인간은 끊임없이 욕망한다. 기업은 광고를 통하여 그 욕망을 계속 부추긴다. 이렇게 사물들이 인간들을 압도하는 세계가 전개되고 있는 것이다. 페렉은 이 소설의 에필로그에서 실비와 제롬의 삶을 미래형 시제로 그리고 있다. 에필로그는 독자 나름대로 해석할 수 있겠지만 적어도 페렉은 방황을 마치고 파리로 돌아오는 실비와 제롬이 앞으로도 사물들의 유혹을 이겨내고 진정한 자아와 행복을 발견하여 살아가기는 힘들 것이라는 암시를 주는 것으로 읽힌다. 사물들의 유혹은 그만큼 뿌리 깊다. 페렉은 우리에게 “제발 무엇이 중요한 것인지 깨닫고 살라”고 점잖지만 단호하게 눈을 맞추고 충고하고 있는 것이다. 한편, 미국 작가 폴 오스터(Paul Auster)는 소설 ‘공중곡예사(Mr. Vertigo)’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결핍에 대해서는 그런 법이다. 뭔가가 부족하면 우리는 끊임없이 그것을 갈망하면서 속으로 ‘만일 그걸 가질 수만 있다면 내 모든 문제가 풀리게 될 거야’라고 말을 하지만, 일단 그것을 얻고 나면, 갈망하는 물건이 손에 들어오고 나면, 그것은 매력을 잃기 시작한다. 다른 욕망들이 고개를 들고, 다른 부족한 것들이 느껴지고, 우리는 어느 새엔가 조금씩 조금씩 원위치로 돌아가게 된다” 그의 깨달음에 경의를 표한다.

21분간의 탄핵 심판 선고 과정을 지켜보면서 가슴 졸였다. 세월호 가족들을 생각하면 아쉬움도 매우 크지만 일단 헌법재판소가 우리 헌법 수호의 마지막 보루임을 확인할 수 있게 된 점에 깊이 감사한다. 그런데 평생을 공주처럼 살아온 박근혜 전 대통령은 도대체 무엇을 갖지 못하였기에, 무엇을 더 갖고 싶어서, 이런 일을 벌였는지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다. 그가 여태 가지지 못한 ‘사물들’이 있었을까? 아닐 것이다. 아마도 그가 바란 것은 ‘사물들’이 아니라 그의 아버지가 바란 것과 같은 ‘영속적 권력’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GreatPark1819(‘18대에 이어 19대 대통령까지’라는 의미로 해석됨)”라는 아이디를 공유하였다는 그들 무리에게 ‘영속적 권력’은 페렉의 ‘사물들’보다 몇 차원 높은 가치였겠지만, 그들이 이를 통하여 계속 집권하게 되었다고 하더라고 그들이 계속 “권력의 결핍”을 느끼고 어떤 불법을 통해서라도 그 결핍을 다시 충족하려고 하였을지도 모른다고 상상하면 끔찍하다. 그러나 이제 CNN의 탄핵 선고 당일 기사 제목 “Park Out(박근혜 파면)”처럼 박근혜의 권력 공원(Park)은 이미 철거(Out)되었다. 지나 보니, 이만 하기 참 다행이다 싶다. 한숨이 나온다.

‘이게 나라냐’는 탄식이 ‘이게 나라다’라는 환희로 바뀌었지만, 탄핵 선고 약 56시간 만에야 청와대를 떠나 일부 지지 세력의 환호 속에 웃으면서 옛집으로 들어가는 전직 대통령의 모습을 보는 국민의 억장은 무너진다. 민간인 신분인 그에 대한 검찰의 신속한 강제수사가 이뤄져야 한다. 그래야 “이제 나라다”라고 선언할 수 있게 될 것이고, 그래야 부역자 처벌 등 진정한 적폐 청산이 드디어 시작될 수 있을 것이다. 아직 가야 할 길이 많이 남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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