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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곽호순 병원장

꽃 한 송이 피어 내려 해도 햇볕이 필요하고 바람도 필요하며 눈보라와 천둥 번개, 심지어는 자신의 잎을 갉아먹는 벌레까지도 필요하지 않은 것이 없다. 그래서 흔들리지 않으며 피는 꽃은 없다고 시인은 노래했을 것이다. 한 사람의 인격이 형성되는 데에도 수많은 요소들이 필요하다. 그 요소라는 것들에는 당연히 전해져 온 유전자가 영향을 미칠 것이며 타고난 기질이 또한 영향을 미칠 것이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성장 동안의 학습과 경험, 그리고 주변 환경들이 끼치는 영향일 것이다. 그중 어린 시절 겪었던 작은 경험 하나가 훗날 자신의 인격의 방향을 정하는데 결정적인 계기가 되는 경우도 많다. 즉, 중요한 시기에 겼었던 작은 경험 하나를 어떻게 해석하고 판단하고 인지하는가에 따라 훗날 이어지는 많은 일이 그 틀 속에서 해석되고 그리하여 어떤 성격을 형성하게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인지주의 학파들은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인생이 결정된다”고 힘주어 설명하기까지 한다. 다음의 이야기는 평생을 범법으로 살아왔던 한 범죄자가 자신의 성장 과정에 겼었던 작은 사건 하나를 회상하며 한탄하는 내용이다. 비록 스쳐 지나가는 작은 일일지라도 그것을 해석하는 방법에 따라 얼마나 인생이 달라질 수 있는가를 충분히 생각해 볼 가치가 있는 얘기이다.

“지금은 범죄자로 이 교도소에 이렇게 수감돼 있지만 나는 사실 천진난만한 산골 아이였습니다.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키우고 그 자연 속에서 살아가던 어느 산골 아이가 바로 나였다는 사실, 좀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착하고 순박한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맘 편히 지내며 어려움을 모르던 그런 산골 아이가 초등학교를 입학했습니다. 산골 마을에서 초등학교까지는 1시간 이상이 걸리는 산길이었지만 아이는 동무들이랑 책보를 등에 메고 즐겁게 뛰어다녔습니다. 광산의 갱목을 운반하는 트럭이 간간이 지나가는 좁은 산길로 산토끼나 다람쥐 벗 삼아 열심히 학교 길을 다녔습니다. 그러던 어느 겨울날 등굣길을 너무 서둘다 그만 다리를 삐게 되었습니다. 삔 다리 때문에 친구들과 뒤처져 터벅터벅 걷던 그 아이 앞에 갑자기 큰 트럭 한 대가 섰습니다. ‘얘야, 어디 가니? 태워 줄까?’ 아이는 난생처음 트럭을 타게 됐습니다. 너무 행복했습니다. 그 멀던 등굣길이 주름 잡히듯 짧아지고, 순식간에 학교에 도착한 아이는 하루 내내 그 감동을 잊을 수 없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그다음부터 입니다. 아이는 매일 등굣길에 은근히 트럭을 기다리는 버릇이 생긴 겁니다. 간간이 지나가는 트럭을 보면 손을 흔들며 태워주기를 기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마음씨 좋은 운전사 아저씨는 더 이상 없었습니다. 점점 트럭을 기대하다가 아침 등굣길이 늦어지기 일쑤였고 지각으로 늘 꾸중 듣던 아이는 그 후 지나가는 트럭을 보면 돌을 던지는 버릇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화 난 운전사에게 잡혀 늘씬하게 얻어맞은 적도 많았습니다. 더 이상 늦은 등굣길에 학교까지 태워 다 줄 트럭 운전사는 없었으며 아이에게는 더 이상 이 세상이 아름답고 좋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아이는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성격이 거칠어지고 남들이 미워지고 남을 이용할 줄 알고 욕을 할 줄 알고 싸움질도 하게 되고 급기야 범죄를 저지르고 도망 다니고 교도소를 들락거리고…. 이제 쉰 중반에 들어선 늙은 전과자의 모습으로 아이는 변해 있었습니다. 그게 내 모습입니다. 지금도 ‘차라리 그때 그 트럭 운전사가 내 앞에 나타나지 않았더라면, 그래서 힘들더라도 내 스스로 학교에 갔었더라면…’하고 부질없는 생각도 해 봅니다. 아직도 그 트럭 운전사가 원망스럽습니다”

살아가면서 민감하고 중요한 시기에 겪게 되는 일들은 비록 작은 일이라고 하더라도 성격 형성에 중요한 영향을 충분히 끼칠 수 있을 것이다.
 

곽호순 병원장
서선미 기자 meeyane@kyongbuk.com

인터넷경북일보 속보 담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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