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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시인
술은 야누스처럼 두 얼굴을 가졌다. 유명 인사의 어록을 보면 예찬과 혹평이 극명하게 엇갈린다. “나는 두뇌를 술보다 좋은 면에 쓰고 살았다. 나의 적이 되는 술에 두뇌를 빼앗기는 일은 절대로 할 수가 없다.” 발명왕 에디슨의 작심 직설이다. “아, 술맛이 멋지군. 고마워!” 작곡가 브람스가 임종할 때 술 한 잔을 걸친 후의 탄성이다.

‘죽은 뒤에 북두칠성에 닿을 만큼 황금을 쌓아도/ 살아서 한 통의 술을 마심만 못하리라’ 당나라 시인 백거이의 ‘권주’라는 작품의 시구. 그는 이백과 더불어 애주하는 문인의 상징이 아니던가. 수년 전 낙양에 있는 무덤 백원을 탐방했을 때 문득 떠오른 상념이 ‘술’이었다.

잡풀과 잡목이 우북하여 봉분인지 언덕인지 구분키 어려울 정도의 풍경. 기와지붕이 얹힌 커다란 화강암 비석을 보고서야 묘지임을 알았다. 만천하 백 씨는 백거이로부터 비롯됐다고 한다. 그래선지 묘역엔 한국의 백씨종친회와 일본인이 건립한 기념비가 세워졌다. 행여 약주가 있었다면 그의 시를 읊조리며 한 모금 쏟았으리라.

동양의 경우 술의 시초는 중국 하나라 시조인 우임금 때라고 한다. 의적이 술을 만들어 바쳤는데, 이를 맛본 우임금은 후세에 술로 나라를 망치는 자가 있을 것이라며 의적을 멀리하였다고 전한다.

연전 중국의 고위 공직자와 술자리를 가진 적이 있다. 명의 화타와 영웅 조조의 고향인 안휘성 박주시에서 열린 전국중의약교역회에 갔을 때다. 한국의 자매도시를 공식 초청하였는데, 인삼을 소개하고 판로를 탐색코자 시장과 시의원이 나섰다. 당시 나는 해당 지역 인삼재배 농가를 대표하여 행사에 참석했다.

개회 전날 군인 출신으로 신장에도 근무했다는 박주시 부시장 주최의 환영 만찬이 열렸다. 시장은 유고로 공석 중이었고, 전국 8대 명주의 하나인 ‘고정공주’가 나왔다. 조조가 한나라 헌제에게 올렸다는 술로서 천 년 고정의 우물물로 빚었다고 한다.

그들의 음주 문화는 건배한 술잔을 남기면 섭섭하다고 느낀다. 음식을 먹으며 끊임없이 대화하고 목소리도 크다. 마치 말싸움하듯이 토해내는 성조이다. 조선족 통역을 통해 부시장과 한참 얘기했다. 사진협회 임원이고 월급은 아내가 관리한다고. 졸작 시집을 선물했더니 문과와 이과를 넘나드는 재주라고 화답했다. 이튿날엔 박주시 당서기가 마련한 자리였다. 그는 원샷한 빈 잔을 머리에 털면서 좌중을 확인하여 당황한 기억이 생생하다.

술은 인류의 역사와 문화를 형성한 소중한 음식이다. 인간의 오랜 친구이기도 하다. 희로애락을 같이한 동반자처럼 서로의 감정을 다독인 매개였다. 한잔 술로 초면의 어색함을 풀고 친숙한 관계로 이끌었다.

한국과 미국은 음주 문화에 차이가 많다. 외국 기업의 상사는 부하에게 취한 모습을 보이는 걸 부끄럽게 여긴다. 반면에 우리는 그걸 대수로 생각지 않는다. 함께 고주망태가 되도록 술을 마시지 못함을 자책하기도 한다.

사회생활의 필수품으로 치부되는 끽주는 양면성이 있어 나름의 절제가 요구된다. 처음엔 사람이 술을 마셨는데, 결국엔 술이 사람을 마신 과유불급이 돼서야 쓰겠는가. 햄릿의 명대사 ‘To be or not to be, that is the question.’은 술에 대한 경구로 빗대어도 손색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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