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군치하에서는 포악한 관리가 기승을 부린다. 광해군 때 제주 목사 이기빈과 제주판관 문희현이 대표적 사례다.

명나라 상인, 일본 상인, 유구 상인들을 태운 국제상선이 표류하다 제주도에 닿았다. 이규민과 문희현이 짜고 이들 조난자 구조를 외면한 뒤 겁에 질린 선원들과 상인들을 모조리 죽이고 배에 실려있던 값비싼 물품들을 약탈했다.

두 사람은 이를 목격한 부하 관리들과 제주 백성에게 함구령을 내렸다. “이 일을 발설하는 자는 죽음을 각오하라”며 협박했다. 둘은 기습적으로 쳐들어온 왜구를 목숨 걸고 물리쳤다고 조정에 허위보고를 했다. 하지만 그들의 악행이 언제까지 덮어질 수 없었다. 그들의 보고가 거짓이라는 것이 드러나 둘은 유배형에 처했다. 함경도 경성으로 유배 간 문희현은 만주어에 능통한 덕에 살길이 열렸다. 경성을 지키는 군 책임자가 그에게 만주족 귀빈들의 접대와 통역을 맡겼다.

그런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다. 만주족 귀빈들이 그를 한양서 온 높은 벼슬아치로 착각해 조선의 임금에게 보내는 후금의 우두머리 누르하치의 밀서를 일개 죄수 신분인 그에게 잘 전해달라고 맡겼다. 그런데 문희현은 그 막중한 외교밀서를 전해주기는커녕 제 호주머니속에서 주물럭거리다가 아예 묵살해 버렸다.

하지만 그 일 역시 그대로 덮어질 수 없었다. 후일 조정에서 그 사실을 알게 되어 문희현을 한양으로 압송, 의금부에 구속했다. 이번에도 능통한 만주어 통역 덕분에 옥에서 풀려나 후금과의 외교문서를 작성하는 일을 맡게 되었다. 광해군의 실리외교에 편승, 문희현의 활약도 더 커졌다. 그러나 문희현의 영화는 거기까지였다.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쫓겨나고 친명을 표방하는 새 정권이 들어서자 문희현은 설 자리를 잃었다.

결국, 과거에 저질렀던 죄상이 드러나 역모죄로 몰려 저승길로 가고 말았다. 문희현의 인생역정은 ‘죄짓고는 못 산다’는 천 리를 입증시켜 주었다.

대통령이 상납한 국가권력을 업고 국정을 농단한 최순실의 죄상이 드러나 대통령까지도 ‘죄짓고 못 산다’는 천 리를 벗어날 수 없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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