高山峻壁見芝蘭 (고산준벽견지란·높은 산 절벽에 핀 지초와 난초)

竹影遮斜幾片寒 (죽영차사기편한·대 그림자 비켜 들어 서늘한 구석)

便以乾坤爲巨室 (변이건곤위거실·하늘과 땅을 커다란 방으로 삼아)

老夫高枕臥其間 (노부고침와기간·늙은 몸 그 사이에 베개를 높여 누워 보네)



▲ 김진태 전 검찰총장
중국 청나라의 문인이자 화가, 서예가인 판교(板橋) 정섭의 제화시이다.

판교는 시·서·화에 뛰어난 이른바 양주팔괴(揚州八怪)의 한 사람으로 그림은 난, 대나무, 바위 등을 주로 그렸고, ‘육분반서’라는 글씨체로 한 시대를 풍미했다. 인품이 고상하고 사리에 밝았으며 애민사상이 투철했지만, 강직하면서 자유분방한 성격에 술과 시를 좋아하고 윗사람에게 허리를 잘 굽히지 않아서 관리 생활은 짧았다.

특이한 것은 중국 역사상 그가 처음으로 서화를 당당하게 정가를 붙여서 팔았다고 한다. 그림을 직업으로 삼은 화공도 아니고 과거에 급제한 지식인인 그의 이러한 행위에 대하여 천박한 장삿속이라는 비난이 높았지만, 예술가로서의 자부심과 예술에 대한 귀족주의적 고정관념을 깨겠다는 생각에서 이를 밀고 나갔다고 한다.

중국 사람이 가장 좋아한다는 ‘난득호도(難得糊塗)’라는 말이 그에게서 나왔다. 총명하기도 어렵고 멍청하기도 어려운데 총명한 사람이 멍청하기는 더더욱 어렵다. 모든 집착을 내려놓고 한 걸음 물러서면 바로 마음이 평안해진다. 그렇다고 나중에 복 받자는 것은 아니다. (聰明難 糊塗難 由聰明而轉入糊塗更難 放一着 退一步 當下心安 非圖後來福報也)

그러나 정작 누가 ‘멍청하기도 어려울까’가 문제이다. 청렴하고 정직하며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조금 멍청하면 좋겠지만 그렇지도 못한 사람이 멍청하면 개인은 물론 나라도 망치는 게 아닐까.

참고로 ‘난득호도’라는 말이 워낙 유명하다 보니 그 유래에 대하여도 여러 설이 있다. 가장 많은 이들이 동의하는 설이 판교가 산동성 내주에 있는 정장공비를 보러 갔다가 ‘호도 노인’이라고 칭하는 노인을 만나 멋모르고 으스대다가 곧바로 크게 깨우치고는 이 말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흘휴시복(吃虧是福·손해를 보는 것이 곧 복이다)’ 또한 판교를 떠오르게 하는 말이다. 차면 줄어들고 비면 점점 차게 된다. 내가 손해를 보면 다른 사람이 이득을 보지만, 그 대신 나는 마음의 평안을 얻게 되니 결국 각자가 마음의 절반은 얻게 된다. 이것이 판교가 말하는 흘휴시복의 의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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