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책꽂이에 꽂는 일이 먼저이고요,
책꽂이의 책을 가지런히 하는 게 그 다음입니다.

책꽂이가 좁아 책을 책상 모서리에 쌓아올려야 하고요.
연필을 깎다 보니 손이 더러워졌죠. 손을 씻고 다시 책상에 앉습니다.

촛불을 밝히는 일이 먼저이고요,
흘러내리는 촛농이 굳기를 기다리는 일이 그 다음입니다.

촛불이 만들어주는 그림자에 흰 종이를 내어 보여주지요.
그림자가 잠드는 때를 기다립니다. 손을 씻고 다시 책상에 앉습니다.

책상 서랍을 열어 잡동사니를 정돈합니다. 필통, 수첩, 만년필,
저금통장, 동전, 묵은 교통카드, 영수증, 알약, 사진 여러 장…….

사진을 보다가 눈이 움푹 들어가 버렸네요. 움푹 팬 눈이
우물이 되었고요. 그 우물 속으로 누가 두레박을 타고 내려옵니다.

(하략)



<감상> 콩자반을 반 쯤 만들었을 때 그의 문자가 왔다. 달콤 짭쪼롬한 콩자반이 생각난다는, 얼른 간장과 조청을 한 숟갈씩 더 넣었다 알지도 못하는 그의 추억 속으로 나도 모르게 따라 들어간 것이다. 무작정 들어간 어떤 길에서 생각지도 못한 꽃밭을 만나기도 했다.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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