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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원 경북생명의 숲 상임대표·화인의원 원장
#장면1 : “대구의 1인당 지역내총생산(GRDP)이 24년 연속 전국 꼴찌를 차지하면서 대구가 못사는 도시라는 인식이 강합니다. (중략) 대구시민 한 사람이 2015년 한 해 동안 생산한 총금액, 즉 1인당 GRDP는 1천9백여만 원으로 전국 평균 3천여만 원의 64%에 그쳤습니다” 한 식당 TV에서 흘러나온 뉴스 일부이다.

#장면2 : 친구로 보이는 3명의 50대 남성들이 이 뉴스를 보고 한마디씩 했다. A씨가 “30년 넘게 대통령 배출했는데”라며 말문을 열자 B씨가 “어디 대통령뿐인가, 국회의원까지 다 밀어줬잖아”라며 거들었다. 이어 C씨가 나서 “우리가 완전히 속은 거지. 다 우리 잘못인 기라”라며 자조하듯 내뱉었다.

지난 10일 헌법재판소는 “국민의 신임을 배반한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고 선고했다. 이에 따라 대선정국이 본격화되고 있다. 그런데 탄핵책임이 무거운 친박세력들이 대선주자로 나서 아직도 대구·경북을 텃밭으로 여기는 뉴스를 접하면서, 지난 2월 목격했던 위의 두 장면이 문득 떠올랐다. ‘24년 연속 전국 꼴찌’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받은 대구시민들은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궁금하다.

특정 자본이 생산과 시장을 지배하는 상태를 ‘독점’이라 한다. 독점은 소비자들에게 상품의 질과 무관하게 선택을 제한할 뿐만 아니라 높은 가격을 지급하게 한다. 소비자들은 독점에 따른 초과이윤만큼 손실을 본다. 소비자는 그야말로 봉이다. 그래서 국가는 공정거래법 등 법적 장치를 통해 독점을 엄격히 규제한다.

정치에도 이러한 독점의 폐해가 있다. 특히 영호남이 심각하다. 일당(一黨)이 지역 정치시장을 독점하면서 주민들은 인물·정책의 질과 무관한 선택을 하게 된다. 이로 인해 공정한 경쟁은 물론 정치소비자인 주민들의 다양한 선택을 가능케 하는 정치시장은 아예 형성되지 않는다.

이는 정치적 소외감과 무관심, 불평과 불만을 낳고, 마침내 지역의 통합과 발전을 저해하는 원인이 된다. 두 지역을 대표하는 대구와 광주의 현실이 이를 잘 보여준다. 두 도시는 1인당 개인소득에서 전국의 광역도시 중 최하위권 수준이다. 이렇듯 정치독점의 폐해는 결국 지역주민들이 전적으로 감당하고 있다.

이러한 정치독점의 폐해를 없애기 위해서는 중대선거구제 같은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한다는 게 중론이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주민들 스스로가 철저한 주인의식으로 정당과 인물을 선택하고 활용하는 용인술을 지니는 것이 더 중요할 것이다. 국가의 흥망성쇠는 제도보다는 사람에서 비롯됐기 때문이다.

우리 역사상 가장 위대한 군주였던 세종대왕은 ‘집현전’을 설치해 인재들을 고르게 등용해 이상적 유교정치를 구현했고, 중국 역사상 가장 태평성세를 이룬 요순정치도 인재의 등용이 그 핵심이다. 조선 후기 정조 또한 ‘규장각’ 인재였던 정약용을 발탁해 개혁과 통합의 군주로 후세의 평가를 받고 있다.

정조는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집을 짓는 것과 비슷하다. 집을 짓는 사람은 먼저 터를 정하고, 다음으로 재목(材木)을 살피고, 그다음에 짓는다. 법을 세우는 것은 터이고, 인재를 선택하는 것은 재목이고, 정령(政令·명령이나 법령)은 짓는 것”이라며 인재의 적재적소 등용을 갈파했다.

일당독식의 폐해는 편식과 다를 바 없다. 편식은 신체의 균형발달을 해치고, 각종 질병의 원인을 제공한다. 정치 편식은 무엇보다 인재 발굴과 육성의 토양을 황폐화시켜 결국은 지역의 경쟁력과 발전마저 해친다. 음식이든 정치든 편식은 우리에게 그저 해로울 따름이다.

영호남 주민들이 이번 대선에서는 일당독점의 폐해를 극복하고, 선거혁명, 정치혁신에 적극적으로 나서 대한민국 정치를 한 단계 끌어올리는 초석을 놓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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