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들은 문학이 시대의 문제를 고민하고 비판하는 것을 당위(當爲)로 여겼다. 1980년대 거대 권력의 억압이 극에 달했을 때 ‘민중문학’이란 이름으로 문학의 사회 참여는 문학비평의 중심개념이기도 했고, 문학의 한 유파이기도 했다. 시대의 억압에 항거한 대표적인 시인으로 김수영 시인을 이야기 한다. 1960년 본격 사회참여 시를 쓰기 시작한 김수영은 1968년 불의의 사고로 세상을 떠난 이후 그의 이름은 더욱 빛이 나기 시작했다.

//풀이 눕는다/비를 몰아오는 동풍에 나부껴/풀은 눕고/드디어 울었다/날이 흐려서 더 울다가/다시 누웠다/풀이 눕는다/바람보다도 빨리 눕는다/바람보다도 더 빨리 울고/바람보다 먼저 일어난다.(하략)// 시 ‘풀’의 앞 부분이다.

4·19를 계기로 사회현실과 시대적 상황에 대한 깊은 통찰을 보이던 그의 시는 ‘풀’이라는 불후의 작품으로 시 정신의 정점을 이뤘다. 굵고 튼튼한 톤으로 소리 높이 울리던 만년의 다른 작품들에 비해 ‘풀’은 흔히 얘기하는 ‘달관의 경지’를 보여주는 시다. 이 작품에서의 ‘풀’은 그냥 눈앞에 보이는 자연 그대로의 풀이 아니다. 크게는 민족과 민중의 끈질긴 생명력, 작게는 한 개인의 끈질긴 저항을 상징한다. 이 작품에서의 ‘바람’은 불의와 부당한 탄압의 바람이다. 그 바람에 ‘풀’은 무력하게 쓰러지지만, 그 바람의 힘을 이기고 다시 유연하게 일어난다. 억압받는 민중이 결국엔 반드시 승리한다는 은유인 것이다.

최근 김수영의 시 ‘풀’의 구절들이 정치적인 수사에 동원되고 있다. 홍준표(경남 도지사) 자유한국당 대선 경선 후보가 21일 박근혜 전 대통령의 검찰 소환과 관련, “요즘 검찰은 딱 한 명의 눈치를 보고 있다. 풀은 바람이 불면 눕지만 검찰은 바람이 불기도 전에 눕는다. 미리 눕는다”고 말했다. ‘대세’로 불리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권 주자를 의식한 발언이다. 홍 후보는 앞서 한 인터넷 방송에 출연해서도 “특검, 정치검사다. 순수한 검사로 봐서는 안 된다”고 비판했다. 탄핵을 받은 박근혜 전 대통령이 검찰에 소환돼 조사를 받는 사상 초유의 일이 벌어지고 있다. 대선이라는 큰 바람 앞에 검찰이 어떻게 움직일지 국민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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