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만 멜빌의 소설 ‘모비 딕’을 보면 에이 햅 선장이 백경(白鯨)과 싸우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그놈을 잡아 죽일 때까지 나는 지구의 끝 희망봉이든, 지옥의 불길 속이든, 가리지 않겠다" 자신의 한쪽 다리를 끊어 삼킨 흰고래를 뒤쫓는 에이 햅 선장의 독백이다. 멜빌은 또 "오로지 지독한 위험 속에서만, 그 분노에 불타오르는 꼬리가 소용돌이치는 바닷속에서만, 끝없이 넓고 넓은 바다에서만, 충분히 살찐 고래의 진정한 산 모습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라고 고래의 위용을 묘사했다.

울산의 고래박물관에서 포경선의 고래잡이 모습을 찍은 기록 사진을 본 적이 있다. 사진을 보고 느낀 것은 고래는 결코 투망(投網) 정도로는 잡을 수 없다는 사실이다. 고래는 거대한 작살이 달린 포를 쏘아 사투를 벌여서야 잡을 수 있다는 점이다. 고래잡이에 나선 어부가 그물을 갖고 나선다면 그것은 처음부터 고래 잡을 생각이 없는 것이다.

그런데 최근 들어 경북 동해안에서 잇따라 고래가 그물에 걸려들었다는 소식이다. 그것도 돌고래 정도가 아닌 몸길이가 4~10m에 이르는 밍크고래가 걸려들어 어민들이 횡재했다. 22일 울진서 잡힌 밍크고래는 1천700만 원, 하루 전 영덕에서 걸려든 놈은 6천300만 원에 판매됐다니 ‘바다의 로또’라 할만하다.

그물에 걸려드는 눈먼 고래 수가 경북 동해안에서 가장 많다. 지난해 전국에서 그물에 걸려든 밍크고래 65마리 중 경북 동해안 것이 32마리로 절반이 넘는다. 로또 밍크고래가 잇따라 위판되는 것을 보면서 불법으로 포획하는 것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드는 것이 사실이다.

국립수산과학원의 한 연구원은 몸길이 10m에 가까운 다 큰 밍크고래를 작살을 사용하지 않고 잡기는 사실상 불가능하기 때문에 불법 포획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한다. 다만 키 4~5m의 1~2년생 새끼고래는 경험이 부족해서 종종 그물에 걸려든다고 한다. 또 고래가 3월부터 5월까지 한반도 남쪽 동중국해까지 내려갔다가 동해를 통해 오호츠크 해를 향해 북쪽으로 회유하기 때문에 통로인 경북 동해에서 그물에 자주 걸려든다고 한다.

문득 동해에서 자취를 감춘 귀신고래는 언제쯤 볼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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