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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가 먼저다] 대구·경북의 중심, 팔공산을 명산으로 만들자-(상) 팔공산의 자연환경과 역사

백두대간 줄기 낙동정맥 따라 팔공기맥 휘감은 신비로운 영산

이종욱 기자 ljw714@kyongbuk.com 등록일 2017년03월22일 20시50분  
팔공산 전경사진. 야산 채희복씨 제공.
한반도 내륙 중심지인 대구광역시 중심부의 북동쪽에 위치한 팔공산은 예로 부터 대구의 진산으로 불려졌다.

팔공산은 강원도 태백시에서 한반도의 중심을 이루는 백두대간과 갈라져 남쪽으로 내달리는 낙동정맥을 타고 내려오다 포항시 북구 죽장면 고래산에서 다시 팔공기맥을 타고 내려와 자리를 잡았다.

현재는 대구광역시와 경북 영천시·경산시·칠곡군·군위군 등 2개 광역단체와 5개 시·군·구가 맞닿아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구와 북쪽 지방을 가르는 경계역할을 맡았던 팔공산은 삼국시대부터 역사의 중심에 서 있었기에 ‘신증동국여지승람’에도 중심산을 말하는 중악으로 기록해 놓았다.

신라 삼국통일의 주역이었던 김유신이 ‘압독군(현 경산시)에서 살던 611년 지혜와 용기가 있는 낭도를 뽑아 천하를 두루 돌아다니고 고사들과 힘써 결속을 맺었으며, 중악에 들어가 노인에게 비결을 받았다(화랑세기)’고 전해지니 아마도 이 중악이 팔공산일 가능성이 높다.

특히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 골짜기의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머리에 갓을 쓰고 있는 형상으로 인해 ‘갓바위’로 불리며, 갓 모양이 대학 학사모를 닮아 매년 입시철마다 전국 각지에서 합격을 기원하는 행렬이 줄을 잇는다.

그런 팔공산이기에 지난 198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으나 이듬해 대구광역시와 경북도가 분리되면서 팔공산을 관리하는 주체가 둘로 나뉘어져 명산으로서의 개발과 발전에 걸림돌이 돼 왔다.

본지는 대구와 경북의 중심에 서 있는 신령스럽고도 아름다운 산세와 한국 역사의 중심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명산 대접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있는 팔공산을 살펴보고 발전방안을 제시해 보고자 한다.

△한국 역사의 중심에 섰던 낙동정맥과 팔공산

한반도는 백두산에서 발원해 허리를 이루는 백두대간을 중심으로 13개의 정맥이 갈빗살처럼 뻗어나가는 모습이다.

그중 낙동정맥은 강원도 태백시 구봉산에서 남쪽으로 부산광역시 다대포 몰운대까지 낙동강의 동쪽에 따라 내려오는 산맥이다.

낙동정맥 주변에는 한반도 역사시대를 열었던 신라가 경주에서 나라를 창업했고, 가야 역시 낙동정맥을 따라 창업하면서 한반도 남쪽의 중심을 이뤘다.

이 낙동정맥이 남쪽으로 내려오다 포항시 북구 죽장면 상옥리에서 서쪽으로 흘러나와 면봉산(민봉산·포항시)·보현산과 화산(영천시)을 거쳐 대구를 거쳐 칠곡군 남동고개까지 이어지는 팔공기맥을 이뤘다.

팔공산은 팔공기맥의 중심 북쪽에 자리 잡은 것이 팔공산이다.

팔공산은 최고봉인 비로봉(천왕봉1천193m)을 중심으로 동봉(1천31m)과 서봉(1천54m)가 새가 날개를 펼친 듯한 모습으로 솟아 있다.

대구광역시와 경북도의 경계에 형성된 환상의 산지는 팔공산맥 또는 팔공산괴라고 부르며, 대구분지의 북부를 병풍처럼 가리고 있다.

팔공산괴는 대구광역시 동구 안심동 소재 초례봉(648m)-환성산(811m)- 팔공산-인봉(887m)-칠곡군 가산(902m)에 이르는 40여㎞가량의 주릉과 여기에서 파생된 수십개의 능선들로 이뤄져 가히 한국의 명산 반열에서 모자람이 없는 곳이다.

지난 2005년 매일신문 이‘팔공산하(八公山河)’라는 제하의 연재기획을 취재했던 박종봉 전 논설위원은 2016년 팔공산 재답사 후 동쪽의 영천시 청통면 치일리 능성재로부터 서쪽의 쐐고개(소야고개·칠곡군 가산면 다부리와 동명면 학명리를 잇는 고개)를 시점과 종점으로 봤다.

그는 이 주릉에서 동쪽 끝봉우리는 해나리봉(745m), 서쪽 끝봉우리는 붓필재(852m)로 비정했으며, 주릉의 바닥길이를 21.15㎞라고 밝혔다.(팔공산하 초판 1쇄, 2017년 1월)

△자연환경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북 영천시·경산시·군위군·칠곡군 등 2개 광역단체 5개 시·군·구에 걸쳐 있는 팔공산의 면적은 126.852㎢(경북 91.487㎢·대구 35.365㎢)에 이른다.

팔공산은 전체 배열이 주변의 구릉지들과는 달리 종상의 산형을 이루고 있으며, 지질은 중생대 백악기 말기에 이뤄진 경상누층군에 불국사화강암이 관입되면서 돔 지형을 형성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일제강점기부터 시작된 경상누층군에 대한 지질연구결과에 따르면 이 당시 형성된 팔공산 화강암체는 적어도 지금보다 2㎞이상 더 두터웠으나 침식작용으로 상부퇴적암이 사라지고 지금처럼 화강암들이 노출된 것으로 추정한다.

즉 현재 팔공산 최고봉인 비로봉은 백악기 말기에는 지하 2㎞지점에 있었으나 침식작용에 의해 지금의 모습을 하고 있다는 의미다.

팔공산은 앞에서 밝힌 주능선외에도 수십개의 능선이 타고 흘러 각 능선의 계곡을 따라 많은 하천이 형성됐다.

북쪽으로는 위천(군위와 의성, 상주를 거쳐가는 낙동강의 제1지류)의 상류인 남천을 비롯 여러 계류가 흐르고 있고, 동쪽에는 한천과 신령천, 남쪽으로는 계류들이 모여 동화천을 이룬 뒤 금호강으로 흘러든다.

또한 팔공산에는 조류 24종·포유류 14종·식물 118과 464속 858종 4아종 193변종 25품종이 분포하는 것으로 조사돼 있다.

△팔공산 명칭의 유래와 역사문화적 환경

팔공산은 예로부터 공산·부악(父岳)으로 불렸고,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중악(中岳)에 비겨 중사(中祠·국가차원의 제2등급 제사)하였다’고 기록돼 있다.

전하는 말로는 후삼국시대 후백제 견훤이 신라를 공격하자 고려 태조 왕건이 군사 5천을 거느리고 정벌에 나섰다가 공산 동수(동화사)전투에서 섬멸될 위기에 놓였으나 신숭겸이 왕건으로 가장해 수레를 타고 적진에 뛰어들어 목숨을 구하자 신숭겸과 함께 전사한 8명의 장수를 기려 팔공산으로 불렀다고 한다.

또한 팔공산은 계곡이 아름답고 산봉이 웅자해 삼국시대부터 수많은 사찰들이 계곡마다 자리를 잡았다.

현재 남아있는 사찰만 하더라도 대구시 동구에 위치한 동화사를 비롯 영천 은해사, 칠곡 송림사를 비롯 부인사·파계사·관암사 등 사찰과 비로·부도·양진·염불·거조·백흥·운부·묘봉·중암·내원암 등 수십개의 암자들이 산재해 있다.

대한불교 조계종 제9교구 본사인 동화사는 삼국시대에 창건된 고찰이며, 임진왜란 때는 사명대사 유정(惟政)이 승군을 지휘해 싸웠던 본거지였다.

동화사에는 입구의 마애여래좌상(보물 제243호)을 비롯한 많은 문화재가 소장돼 있으며, 주변에는 간장병에 효험이 있다는 구세약수가 있어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또 영천 은해사에는 국보 제14호인 거조암 영산전을 비롯해 2점의 보물이 있으며, 동화사 말사(末寺)인 칠곡 송림사에는 보물 제189호인 오층전탑이 있다.

부인사는 고려대장경 판본을 소장했던 곳이다.

하지만 팔공산을 가장 유명하게 만든 것은 이들 사찰이 아니라 경산시 와촌면 대한리에 소재한 관봉 석조여래좌상(보물 제431호)이다.

신라 제37대 선덕왕(재위기간 780년∼785년) 때 의현대사가 어머니의 넋을 기리기 위해 건립하였다고 전해지지만 학자들은 이보다 후대인 9세기 양식특징을 보인다는 평이다.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머리에 관을 쓰고 있어 관봉이라는 이름을 낳았으며, 오른손은 항마촉지인과 유사한 모양을 하고 있고, 왼손에는 조그만 약항아리를 들고 있어 약사여래불을 표현한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갓바위’라는 이름이 더 널리 알려진 관봉 석조여래좌상은 기도를 하면 한 번의 소원은 반드시 들어준다는 기복신앙지이자 머리의 갓이 학사모를 닮아 매년 대학수능일만 되면 전국 각지에서 몰려드는 학부모들로 인해 약 330㎡남짓되는 정상부는 가히 발디딜 공간조차 마련하기 어려울 지경이다.

이처럼 갓바위가 전국적인 명성을 타자 100m가량의 행정경계선을 두고 있는 대구광역시 동구와 경산시간 갈등이 이어지고 있다.

갓바위 만큼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군위군 부계면 ‘군위삼존석굴(국보 제109호)’역시 빼놓을 수 없는 곳이다.

팔공산을 이루는 화강암벽에 높이 4.25m의 석굴을 파고 2.88m의 본존불과 1.92m의 왼쪽보살, 1.8m의 오른쪽 보살 등 세분의 부처님을 모셔놓았다.

이 석굴은 원효대사가 신라의 삼국 통일과정에서 죽어간 사람들의 넋을 위로하기 위해 세운 것으로 전해져 경주 석굴암보다 제작연대가 빠르다.

이외에도 조선시대 산성인 가산산성과 천주교 신자들의 피난처였던 칠곡 한티성지 등 여러 문화유산들이 팔공산 자락에 산재해 있다.

이처럼 화강암체로 이뤄진 팔공산의 웅자한 능선과 이를 타고 흐르는 아름다운 계곡, 그리고 능선마다 한국의 역사와 함께 해 온 역사유산들이 산재해 지난 1980년 도립공원으로 지정됐다.

그러나 불과 1년여 뒤인 1981년 7월 1일 경북도청 소재지 였던 대구시가 광역시로 승격되면서 팔공산에 대한 종합적인 발전계획 마련을 저해하는 원인이 되고 말았다.

이로 인해 지금은 대구지역은 팔공산자연공원관리사무소가, 경북지역은 팔공산도립공원관리사무소로 분리돼 관리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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