찰수수 대가리마다 양파망이 씌워져있다
가을이 이렇게 가까이 와 있지만
눈 밝은 새들만이 빛이 눕고 저녁이 눕는 자리를 안다

고추잠자리 많은 동네엔 모기가 들끓었으므로
하늘에 없던 별자리가 외진 몸의 광휘가 되었다

흘러가는 것들이 잘 보이는 수수밭엔
정신없이 돌 속으로 들어가 죽는 뱀도 있고
울음이란 뼈를 안고 잠드는 벌레들도 있다

환하지 않아도 물소리 깊은 밤이 마른침을 삼킨다
으레 깨져서 붙여놓은 새끼발가락은 아직도 보랏빛이다

독니 가진 것들이 매일 바퀴에 깔려 죽었지만
붉은빛은 끝도 없이 목 가진 것들을 비틀어 꺾는다





감상) 오전엔 해가 뜨고 오후엔 비가 온다. 며칠 째다. 널어놓은 마음이 마르고 젖기를 반복한다. 아무 것도 아물지 못한 채 저녁을 맞고 아무 것도 바닥까지 내려앉지 못한 채 아침을 맞는다. 그러나 내일이면 또 해가 뜰 거라는 기다림은 오후를 견디게 한다.(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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