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골을 떠나 삭막한 서울의 뒷골목을 방황하던 나는 어느덧 소르본대학의 낯선 거리를 5년 동안이나 외롭게 서성거린다. 파리의 좁은 길이 로스앤젤레스의 황량한 길로 연결되고, 그 길은 다시 보스턴의 각박한 꼬부랑길로 통했다.(…)논두렁길에서 시작된 나의 길은 믿어지지 않을 만큼 길고도 짧았다. 어느덧 내 삶의 오후가 왔음을 의식한다. 약간은 아쉽고 초조해진다. 갈 길은 더욱 아득해 보이는데 근본적 문제들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알쏭달쏭하기만 하다”

이 글은 ‘둥지의 철학자’로 불리는 고 박이문 선생이 쓴 수필 ‘나의 길, 나의 삶’ 중 한 부분이다. 1990년대 후반 고등학교 국어 교과서에도 실린 글이다. 선생은 또 “답은 없다. 세상엔 만 개의 문제, 만 개의 대답이 있다. 인생은 둥지 짓기다. 다만 내 스스로 답을 찾아 자기 존재를 명명하고 이 세상을 살아가는 것이다” 라고 했다. 그는 “세계관으로서의 철학이라는 건축활동, 그 동기와 건축구조는 새의 둥지 짓기와 같다. 우리가 바라보는 세상이 하나의 그림이라면 그 상(像)이 자연과 더불어 사는 ‘둥지’와 같은 것이 돼야 한다”고 했다. 인생을 ‘둥지 짓기’라고 한 그의 철학적 세계관은 ‘둥지의 철학’으로 명명했다.

박이문 선생은 일제강점기인 1930년 2월 충남 아산의 유학자 집안에서 막내아들로 태어났다. 1955년 서울대 불문과를 졸업하고, 그해 사상계에 ‘회화를 잃은 세대’라는 시를 발표하며 등단했다. 이어 대학원에 진학해 스물일곱 살에 ‘폴 발레리에 있어서 지성과 현실과의 변증법으로서의 시’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대학원 졸업 후 이화여대 전임강사로 발탁되지만 안정된 교수직을 버리고 프랑스로 떠나 문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프랑스 유학 후엔 미국으로 건너가 철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국내외 대학에서 수십 년간 철학을 가르쳤다. 특히 지난 1991년부터 지역의 포스텍 철학과 교수로 재직하면서 왕성한 저작활동을 펼쳤다. 지난 26일 향년 87세로 별세하기까지 포스텍 명예교수 직함을 가졌다.

그는 철하자 이자, 시인으로 문사철(文史哲)을 넘나드는 100여 권의 책을 펴냈다. 고인의 앎을 향한 학문적 분투에 경의를 표한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