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라놓은 반 토막 무에서 싹이 돋아 나왔다.

할머니는 처녀적 사립문 같다고 하고 아버지는 막 빠져나오는 송아지 같다고 하고 나는,
혁명 같다고 했다.

연속 재배하면 벌레 먹고, 풀이 날개를 치면 한없이 나약해져버리는 무. 두더지가 지나간 자리를 싹둑 잘라 두었던 것인데, 잘린 쪽은 이미 구름으로 덥혀져 있다. 구름의 본성은 땅으로 스며들고 스며든 본성이 하늘을 닮아간다는 것, 부챗살 같이 퍼진 무의 속을 보면 알 수 있다.

무는 흰 구름과 파란 하늘이 함께 들어있는 채소라서, 무를 여러 번 말하면 맵고 지린 맛이 난다.

(하략)



감상)인터넷 공유기를 달고 나서부터 나는 늘 누군가에게 읽히는 느낌이 든다. 나를 뚫고 지나간 그 전파가 벽이나 천창에 닿아 나를 전달하고 있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벽이 나를 볼 때, 천장이 나를 볼 때, 나는 아무리 숨겨도 감춰지지 않는 게 있다는 걸 알게 된다. 내 거실에는 여러 명의 내가 분주히 왔다 갔다 한다. 나를 읽는 수많은 전파가 어떤 나는 버리고 어떤 나는 살려 놓기도 한다. (시인 최라라)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