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 없이 앓는,/ 안동댐 민속촌의 헛제삿밥 같은,/ 그런 것들을 시랍시고 쓰지는 말자.// 강 건너 임청각 기왓곡에는/ 아직도 북만주의 삭풍이 불고,/ 한낮에도 무시로 서리가 내린다.// 진실은 따뜻한 아랫목이 아니라/ 성에 낀 창가에나 얼비치는 것,/ 선열한 육사의 겨울 무지개!// 유유히 날던 학 같은 건 이제는 없다./ 얼음 박힌 산천에 불을 지피며/ 오늘도 타는 저녁 노을 속,// 깃털을 곤두세우고/ 찬바람 거스르는/ 솔개 한 마리”

경북 안동이 고향인 김종길 시인의 시 ‘솔개’다. 그의 시에는 고향이 배경이 된 시가 몇 편 있다. 그 가운데 그의 시 정신을 보여 주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시를 아픔 없이 넋두리처럼 쓰지 말라는 경고다. 그러면서 임청각과 육사의 강철 무지개를 끌어와 그렇게 치열하게 시를 써야 한다고 한다.

임청각은 임시정부 초기 초대국무령 석주 이상룡 선생의 생가이자 많은 독립지사를 배출한 고성이씨 가문의 종가다. 한낮에도 서리가 내릴 정도의 절개와 충절의 상징이다. 또 시인은 일제에 쫓겨 북만주로 떠났던 안동 출신 이육사의 시 절정에 나오는 ‘강철로 된 무지개’에서 차운, 하늘을 한가하게 나는 학이 아니라 찬 바람을 거스르는 매처럼 긴장하고 치열하게 살아야 한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달맞이꽃’이란 시도 있다. “임하댐 준공으로/ 고향 마을은 거의 비어버리고/ 자보러 넘어다니던 황산재 옆구리를/ 새로 뚫린 도로가/ 능구렁이처럼 감고 있었다.// 덜컹거리는 봉고차로/ 상처 난 산허리의 쓰린 흙빛을/ 눈으로 밟으면서/ 넘는 30리 길.// 달맞이꽃만은/ 길가에 지천으로 피어/ 마을 사람들 대신 맞아주었다.” 김 시인의 고향은 안동시 임동면 지례다. 1993년 준공된 다목적댐인 임하댐이 들어서면서 마을이 물에 잠기고 난 뒤 고향을 찾은 느낌을 시로 썼다.

시 ‘성탄제’로 유명한 김종길 시인이 향년 91세로 별세했다. 지난달 21일 부인을 먼저 떠나 보낸 뒤 열흘만인 1일, 뒤를 따라갔다. 고인의 시를 평론가들은 ‘서양의 이미지즘을 받아들이면서도 기교에 치우치지 않고 고전적 품격을 지녔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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