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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시인
게가 느릿느릿 기어간다. 한데 옆으로 가는 게 아니라 똑바로 걷는다. 사람들은 신기하다며 웅성거렸다. 걸음을 멈춘 게가 말했다. “그래, 나, 취했다. 됐냐?” 고주망태로 비틀거리는 취객을 은근히 풍자한 블랙 유머.

문자의 발명은 인류의 진보를 통틀어 단연 으뜸이다. 문명의 발전에 지대한 영향을 끼쳤다. 역사 이전과 이후를 가늠하는 잣대는 바로 글자의 사용 여부였다. 기록이나 문헌이 있으면 역사 시대이고, 그렇지 않으면 선사 시대로 간주됐다.

영국 BBC와 대영박물관이 펴낸 ‘100대 유물로 보는 세계사’엔 메소포타미아의 점토판 얘기가 나온다. 상형 문자로 새겨진 오천 년 전의 서판은 맥주와 관료제의 탄생에 관한 내용. 맥주 담는 그릇을 상징하는 단지 그림을 그리고, 숫자로 배급 현황을 표시했다. 당시 맥주는 주요 음료이면서 일꾼들의 식량이었다고 한다. 이는 맥주에 관한 최초의 문자 흔적이기도 하다.

한데 맥주는 알코올인가 음료수인가. 중동의 수메르인뿐만 아니라 18세기 유럽도 맥주는 즐겨 상용하는 음료였다. 유럽은 석회암 지대로 형성된 땅이라 수돗물에 탄산칼슘이 녹아 있어 식수로는 적합지 않다. 요즘도 정수를 들이키듯 맥주를 상용하는 경우가 흔하다.

사적으론 음료수로 쳤으면 좋겠다. 따끈한 커피 한잔 놓고 대화 나누듯이 시원한 맥주를 마시며 하루를 끝냈으면 해서다. 당연히 공납도 줄어들어 판매 가격도 싸진다. 투명한 소주잔이나 황금빛 유리잔을 대하면 세금이 오버랩 된다. 우리는 무의식중에 깜짝 놀랄 정도의 간접 소비세를 납부한다.

주세는 술의 종류에 따라 부과된다. 소주와 맥주 공히 공장 출고가의 72%에 이르는 주세와 이의 30%에 해당하는 교육세, 그리고 출고가·주세·교육세를 합한 금액의 10%를 부가세로 부담한다.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는 말 그대로다.

언젠가 어느 단체에서 애주가를 대상으로 소주와 맥주를 섞어 만드는 소맥 폭탄주의 황금 비율을 물었다. 이를 선호하는 상당수 주당의 의견인 즉 소주 30에 맥주 70이 가장 적당하다고 응답했다. 또한 젊을수록 폭탄주를 찾고, 그 종류로는 소주와 맥주의 혼합이 압도적으로 많다는 조사도 있었다.

한국의 술자리 문화는 ‘주류와 비주류’는 구분하면서도 ‘소주파와 맥주파’로는 배려가 없는 것 같다. 각자의 취향은 무시하고 그냥 국민주인 소주로 통일해서 좌중이 함께 취하는 분위기다. 술좌석의 개성 찾기는 나의 오랜 직장생활 내내 쉽지 않은 고역이었다.

맥주는 미묘하면서도 예민한 맛을 가졌다. 물론 신의 물방울이라 격찬받는 와인에는 미치지 못하나 미각의 차이가 크다. 나름의 전통과 기술이 필요한 이유다. 나아지긴 했으나 국산 맥주에 대한 평가는 여전히 박하다. 수입 맥주 시장이 꾸준히 성장하고 있는 점이 이를 반증한다.

중국 칭다오 맥주 박물관에는 시진핑 주석이 맥주잔을 놓고 앉아있는 대형 사진이 붙었다. 최고 지도자의 특산품 사랑에 자부심 비슷한 후광이 어렸다. 관람객에게 제공되는 원맥 한 잔의 시음은 짜릿한 입맛으로 남았고, 매장에 진열된 병맥은 6.5∼30위안으로 가격이 천차만별이었다.

맥주는 환경 역행의 지속 가능하지 않은 음식이다. 가상수 소비량이 과도하기 때문이다. 한 병을 생산하는데 네댓 배의 폐수가 발생한다. 상큼한 마력에 숨겨진 불편한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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