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벽대전에서 완패한 조조는 몇 명의 측근만 거느리고 달아나고 있었다. 퇴각하던 조조 일행이 화룡도라는 고개에 이르렀다. 그곳에는 이미 관우가 지휘하는 촉나라 군대가 퇴로를 막고 조조를 기다리고 있었다. 조조는 “이제는 끝장이구나” 하면서 모든 것을 체념했다. 그 막다른 골목에서 관우는 조조를 못 본체하고 조조에게 활로를 열어줬다.

관우의 관용이 아니었으면 조조의 인생은 거기서 끝났을지도 모른다. 관우가 관용을 베푼 것은 8년 전 자신이 조조로부터 입은 관용에 대한 보답이었다. 관우가 조조의 인질로 잡혀 있을 때 관도의 싸움에서 원소의 맹장 안량과 문추를 단칼에 벤 관우를 조조는 자기 휘하에 두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 조조는 ‘3일 소연 5일 대연’이란 말이 생길 만큼 관우를 극진히 대접했다.

그러나 관우는 하루빨리 조조에게서 벗어나 유비에게 가야 한다는 일념으로 일각이 여삼추였다. 조조는 관우와 친한 장료를 시켜 관우의 의향을 떠보도록 했다. “승상이 내게 베푼 마음은 뼈에 사무치게 감사하나 나는 대형인 유비와 생사를 같이하기로 이미 맹세한 몸이다. 유비 말고는 아무도 섬길 생각이 없다. 승상을 위해 공도 세웠으니 지금이 떠나야 할 때다”

장료로부터 관우의 대답을 들은 조조는 “과연 관우로다. 초지일관 형제의 의리를 지키다니. 그를 말릴 수가 없구나” 하며 아쉬워했다. 관우는 함께 붙잡혀 있던 유비의 두 부인과 달아났다. 뒤쫓아 가 관우를 잡아야 한다는 장군들의 성화에 조조는 “그럴 필요가 없다. 그가 취한 길은 주인에게 충성을 다하는 사나이 의리다”면서 추격을 말렸다.

두 사람의 ‘장군멍군 관용’은 ‘인정은 남을 위해 베푸는 것이 아니라 자기자신을 위해 베푸는 것’임을 확인시켰다. 난세에 적대관계에 있던 두 사람이 서로에게 베푼 관용에서 인간관계의 멋과 도량이 가슴을 뭉클하게 한다. 삭막하고, 거칠고, 인정머리 없는 우리 정치를 두고 멋과 낭만이 없다고 한탄하는 사람이 많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끝내 구속됐다. 도량 큰 정치가 그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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