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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원 (주)컬처팩토리 대표
다양한 대중매체 시대에 지역 연극은 어디에 있어야 하며 있다면 어떻게 있어야 하는가.

오늘도 지역에는 꾸준히 연극이 올려지고 있다. 아동극, 성인극, 대학극, 악극, 코미디극, 연극제 등 실로 다양하며 외형적으로는 풍성하기 이를 데가 없다. 여기다가 청소년연극제도 열려 20여 개의 고교연극반이 활동하며 중학교에도 특별활동으로 연극반이 개설돼 있다. 아동에서 중학생, 고교생, 대학생, 시립극단, 일반극단 등 구색은 세계 어디를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다. 동시에 극장도 1천석 이상의 대극장을 비롯해 각 구 군마다 문화전당이 있으며 20여 개의 소극장도 보유하고 있다. 실로 많은 변화가 생겨났다. 그러나 이 변화는 막연한 변화에 머물고 있다. 막연(漠然)하다의 국어사전적 정의는 아득한 모양, 똑똑하지 못하고 어렴풋함이다. 그렇다. 막연하다. 작품은 생산되지만, 연극은 빈곤하다. 연극에 대한 치열한 비평도 사라진 지 오래다. 비평은 바둑처럼 작품을 복기하며 새로운 생명을 불어넣고 토론의 장으로 이끌어내는데 어느 사이엔가 비평은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이런 가운데 가장 현명한 이는 관객이었다. 이들은 극장을 떠나 연극을 떠나 이제는 연극의 생존마저 위협하고 있다. 지역 연극은 공허하다. 모두가 막연하게 있는 동안에 관객은 다른 오락 매체로 이동을 시작했고 그 끝은 보이지 않는다. 텅 빈 극장은 연극의 공동묘지이다. 묘지는 부유한다. 겉으로는 머물러 고정돼 있지만, 실상은 떠돌아다닌다. 연극의 정신은 사라졌다. 열악한 재정여건, 비좁은 연습실, 임대료, 인쇄비, 교통비도 되지 않는 몇 푼의 출연료 등 현재 상황에서는 완벽한 연극 정신을 추구하기에는 연습장으로 향하는 연극인들의 발걸음이 더디고 무겁기만 하다. 이런 상황을 깨부수고 관객을 다시 지역 연극 작품으로 되돌아오기 위한 몇 가지의 방안을 제시한다.

먼저 극단의 이념을 재정립하는 것이다. 물론 극단이 한 장르만 고집할 필요는 없지만 최소한의 정체성 확보는 단원 사이의 정신을 연결하고 묶어줌으로써 집단예술인 연극의 독특한 생산을 담보해내는 최소한의 장치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이는 극단마다 독특한 작품생산으로 이어져 여러 기호의 관객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줄 수 있을 것이다.

다음은 연극만이 가지는 장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연극은 타 장르의 예술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장점인 연극만의 독특한 연극적 문법이 있다. 그것은 바로 같은 시간과 공간 속에서 ‘만난다는 것’이다. 즉 예술이 생산되는 현장에서 육체 언어와 음성 언어를 가진 배우라는 인물이 관객이라는 인물과 함께 생산하고 소비하는 구조를 가지고 있다. 이런 현장에서의 생산과 소비의 만남은 강렬한 카타르시스를 유발한다. 고대이래 현대까지 연극이 버틸 수 있었고 앞으로도 유효한 연극만의 무기는 라이브( live)라는 것이다. 물론 현장에서 생산되고 사라지는 연극적 문법은 복제와 저장이라는 대량유통의 시대에 연극을 가난하게 만드는 치명적인 약점이다. 그러나 이 약점을 장점으로 바꾸어 놓는 현장예술만이 가지는 강점을 강화하고 관객과 함께 웃고 우는 동시대성을 추구해나가는 연극적 방법론을 개발해야 한다.

또 지역에만 존재하는 연극적 언어를 생산하는 것이다. 소재만 지역 이야기를 무대에 올린다고 해서 그것은 아무런 보편성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다. 부산의 극단 ‘연희단 거리패’가 그들만의 투박한 부산사투리와 거친 신체언어로 가냘프게만 호소하던 연극적 언어를 과감하게 탈피함으로써 그들은 한국적 연희(演戱)양식의 전범(典範)을 찾아냈고 관객의 열렬한 호응을 끌어내고 있다. 지역 연극은 이 지역만의 톡특한 억양, 행동양식, 표현양식 등에서 새로운 연극적 언어를 찾아내는 시도를 해야 한다. 지역 연극만의 독특한 맛과 아무도 흉내 낼 수 없는 또 다른 연극 전범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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