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산군의 폭정에 맞선 신하는 선비가 아닌 내시였다. 연산군은 무오사화, 갑자사화로 많은 신하를 죽이고 피비린내 나는 폭정을 거듭했다. 생모인 폐비 윤씨 사건과 관련된 갑자사화에선 이미 죽은 한명희, 정여창, 남효온의 시체를 무덤에서 꺼내 부관참시하는 등 공포정치가 극에 달했다.

왕의 잘못을 직언해야 할 대사헌, 대사관 등 언관들은 무론 성균관의 젊은 유생들 중에서도 아무도 나서 직언하는 사람이 없었다. 이 때 왕의 내시인 김처선이 목숨을 걸고 직언했다. 세종 때부터 연산군까지 일곱 임금을 섬긴 김처선은 연산군이 궁중에서 처용놀이를 하면서 음란한 춤을 추자 이를 보다못해 직언을 감행했다.

김처선은 입궁하기 위해 집을 나설 때 집안 식구들에게 “오늘은 내가 죽게 될 것이다”라는 유언을 남겼다. 연산군 앞으로 다가간 김처선은 왕에게 간했다. “제가 지금까지 일곱 임금을 모셨지만 고금에 지금의 임금처럼 하신 분은 없습니다” 격노한 연산은 김처선을 향해 활을 쏘았다. 어깨에 화살을 맞고도 김처선은 말문을 닫지 않았다.

“늙은 내시가 어찌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다만 임금께서 임금의 자리에 오랫동안 머물 수 없을 것 같아 안타까울 뿐입니다” 분노가 폭발한 연산은 김처선의 다리를 자르고 혀를 자른 후 배를 갈라 창자까지 끄집어 내는 만행까지 저질렀다. 그래도 분이 안 풀린 연산은 김처선의 양자까지 죽이고 전국에 명해 김처선 이름의 ‘처(處)’자는 사용하지 못하도록 했다.

그 해 과거시험에 권발이라는 선비가 합격했지만 답안지에 ‘처’자가 있는 것이 발견돼 합격이 취소되기도 했다. 김처선은 모든 공직자와 선비들이 연산군의 폭정에 숨죽이며 눈치만 보고 있을 때 홀로 목숨을 걸고 직언을 했던 것이다. 하지만 내시라는 신분의 한계 때문에 역사적 관심을 받지 못했다.

최순실 국정농단이 극으로 치닫고 있을 때 박근혜 전 대통령에게 직언하는 공직자는 한 명도 없었다. 대선을 앞두고 고위 공직자와 대학교수들이 문재인 앞으로 줄을 서고 있다. 내시보다 못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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