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연일시인.jpg
▲ 배연일 창원대학교 특수교육과 외래교수/시인


포항 연일백합유치원의 이화조 원장. 그는 나의 오랜 제자로서 내게 정말 가슴 뭉클한 감동을 선사해 주는 사람이다. 그뿐만 아니라, 늘 나 자신을 돌아보게 하는 그런 제자이기도 하다. 아니, 이 원장과 같은 제자는 내 교직 인생에 전무후무할 거라고 나는 감히 단언해 마지 않는다.

이 원장은 대학 재학시절 훗날 우리 사회에서 소외된 사람을 돕고 싶다는 포부를 이따금 얘기하곤 했는데, 그 결심대로 그는 유아 교사가 된 후 적지 않은 후원금을 장애인복지시설 등에 내놓아 내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 주었다. 그런데 그보다 더 놀랄만한 이야기가 있어 이제 그 보따리를 풀어 놓고자 한다.

이 원장은 약 20여 년 전부터 명절 때만 되면 나를 비롯한 학과 교수들에게 과일 상자를 보내주고 있다. 처음엔 한두 번 그러다 말겠지 했는데, 그렇게 시작한 과일 선물 보내기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몇 해 동안 과일을 받던 나는 고맙긴 하지만 이제 더는 보내지 않아도 된다고 여러 차례에 걸쳐 정중하게 사양을 했지만, 그러나 이 원장은 명절 때만 되면 어김없이 과일 선물을 보내주는 것이었다.

솔직히 말해, 사제지간이라 할지라도 무슨 이해관계가 있다면 무언가를 기대해서 보내는 경우도 없지 않아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와 이 원장은 서로가 멀리 떨어져 사는 데다가 또 내가 이 원장에게 어떤 도움을 줄 수 있는 그런 위치도 전혀 아니다.

그런데도 이 원장은 20년이 넘도록 명절 때만 되면 이렇게 과일 상자를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보내주고 있는 것이다. 이 원장의 얘긴즉 가르쳐준 교수들의 덕분에 오늘의 자신이 있으니 그저 스승의 은혜에 감사해서 보내는 것이니 전혀 부담을 갖지 말라는 당부를 하면서 말이다.

그러나 그렇다 해도 20년이 넘도록 명절 때마다 이렇게 단 한 번도 빠트리지 않고 감사 인사를 하는 제자는 모르긴 해도 이 세상 어디에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이따금 이 원장을 통해 나 자신을 돌아볼 때가 있다. 나는 과연 내가 은혜 입은 스승께 얼마나 감사 인사를 하고 있는지를 말이다. 하지만 나는 그럴 때마다 나 자신이 한없이 작아지고 부끄러워지지 않을 수가 없다. 왜냐하면, 나는 이 원장의 그림자조차도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게 나의 솔직히 고백이기 때문이다.

엔돌핀(Endorphin)이 암을 치료하고 통증을 해소하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이미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그런데 최근 의학이 발견한 호르몬 중에 ‘다이돌핀(didorphin)’이라는 게 있다. 이 다이돌핀의 효과는 놀랍게도 엔돌핀의 무려 4천 배나 된다고 한다. 다이돌핀은 감동을 받을 때 생성된다고 해서 감동 호르몬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이것은 좋은 음악을 듣거나 아름다운 풍경에 압도되었을 때, 전혀 알지 못했던 새로운 진리를 깨달았을 때, 엄청난(?) 사랑에 빠졌을 때 생성된다고 한다.

이 원장은 지난 설에도 내게 과일 선물을 보내주어 또 한 번 감동호르몬을 넘실거리게 해주었다. 그렇다면 나는 누구에게 다이돌핀을 솟게 해주어야 할지 나로선 정말 크나큰 숙제가 아닐 수 없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