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상서 5차례 진행…"죽거든 보도해달라…배우로 살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
"배우 겸손해야…운 좋게 좋은 배역 만나서 명예 얻는 거잖아요"

▲ 배우 김영애
“죽음을 앞두고 아까운 건 없어요. 그런데 연기는 좀 아깝긴 해요. 이만한 배우 키워내려면 40~50년은 걸리는 거니까. 그것 말고는 미련도, 아까운 것도 없어요.”

모든 것을 내려놓은 배우의 목소리는 편안했고, 차분했다.

살도 점점 내려 마지막에는 뼈만 앙상하게 남았지만, 그의 표정에 회한은 어리지 않았다.

침이 바짝바짝 말라 말의 속도는 더뎠고 힘은 없었다. 그러나 표정은 온화했고 눈빛은 투명했다.

지난 9일 별세한 배우 김영애가 눈 감기 전 생애 마지막 인터뷰를 연합뉴스와 진행했다. 지난해 10월말 병원에 입원한 그는 세상과 작별할 때까지 집으로 돌아가지 못했다.

인터뷰는 작년 11월부터 올 2월까지 5차례에 걸쳐 진행됐다. 상태가 좋을 때는 2시간 넘게 이야기를 풀어냈고, 갑자기 안 좋아지면 한마디도 하지 못했다.

김영애는 “세상을 뜨기 전 뭔가 정리를 하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면서 “이 인터뷰는 내가 죽거든 내보내 달라”고 당부했다.


◇예쁜 부산 소녀, MBC 탤런트 시험에 붙다

1951년 부산에서 태어난 김영애는 부산여자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하고 1971년 MBC 공채 탤런트 3기로 연기 생활을 시작했다.

“상업학교 나와서 대입 재수한다고 서울 친척집에 왔는데…옛날엔 예쁘장하면 배우 하라고 많이들 그랬어요. 친척 언니가 MBC 탤런트시험 원서 사 가지고 와서는 나보고 지원해보라고 해서 했는데 운 좋게 덜컥 됐어요.”

김영애는 “그때는 탤런트시험에 붙으면 방송사에서 월급을 줬다. 월급을 준다고 하니 배우를 했지, 배우가 뭔지 제대로 알았으면 좀 생각을 해봤을 것 같다”며 웃었다.

“최소한 이름이라도 예명으로 바꿨을 거 아니냐”는 그는 “그럼 이혼을 해도 숨길 수 있었을 텐데, 내가 너무 순진했다”고 농담을 했다.

그는 공채로 뽑힌 지 2년만인 1973년 일일극 ‘민비’의 주인공으로 발탁됐다.

“굉장히 빨리 주인공이 된 거였어요. 획기적이었죠. 당시 내가 너무 긴장해서 정동 MBC 정문 앞에서 쓰러지기도 했어요. 그렇게 어렵게 찍은 ‘민비’로 김영애라는 배우가 만들어졌죠.”

이후 ‘강남가족’ ‘수선화’ 등에 출연했고, ‘야상곡’으로 백상예술대상 신인상을 받았다. 그는 ‘야상곡’을 통해 “연기의 참맛을 알게 됐다”고 돌아봤다.

“처음에는 뭘 몰랐고, 25~26세에야 연기에 재미가 들기 시작했어요. ‘이거 참 재밌다’, ‘이거 해야겠다’ 하다 보니 내가 배우 안 했으면 뭘 하며 살았을까 싶더라고요. 배우로 살 수 있게 해준 모든 것에 감사합니다.”


◇‘형제의 강’ ‘파도’ ‘황진이’를 ‘인생작’으로 꼽아

그는 자신의 ‘인생작’으로 드라마 ‘형제의 강’ ‘파도’ ‘황진이’를 꼽았다.

“시대극 ‘형제의 강’이 1996년 작품인데, 내가 도회적이라는 말을 많이 들었기 때문에 처음에는 미스 캐스팅이란 소리가 나왔어요. 나한테는 연기의 폭을 넓힌 작품입니다. 어머니상을 구축한 작품이고요. 작품도 좋았고 연기하는 게 재미있었어요. 1999년 ‘파도’는 멜로가 있는 엄마의 이야기라 재미있었고요.”

그는 특히 2006년 방송된 24부작 ‘황진이’를 자랑스러워했다.

“요즘 ‘황진이’의 윤선주 작가가 일주일에 한 번씩 병문안을 와서 날 즐겁게 해주고 가요. 윤 작가랑 이야기하면서 이번에 ‘황진이’를 다시 봤는데 주옥같은 대사와 예쁜 그림, 뛰어난 연출 솜씨가 새록새록 생각났어요. 그 당시에는 못 보고 넘어갔던 게 다 보이더라고요. 처음 대본 받았을 때 내가 이걸 어찌해낼까, 어찌 제대로 해낼까 무서워했던 기억이 나요. 10년 전 작품인데도 지금도 외국인에게 우리나라를 알리기 위해 보여주고 싶을 만큼 빼어난 작품입니다. 지금 봐도 하나도 안 이상하고 자랑스러운 작품이에요.”

하지원이 주연을 맡은 ‘황진이’에서 김영애는 임백무 역을 연기했다. 천출이지만 조선 최고의 춤꾼이라 불리는, 송도관아의 행수기녀다. 황진이를 키워내는 엄하고 독한 스승이자, 춤에 대한 자존심이 하늘을 찌르는 인물이다.

“임백무를 연기할 때 진짜 너무 무서웠어요. 제대로 연기를 못해낼까 봐. 난 항상 작가들이 힘들게 쓴 대본을 제대로 연기로 표현해내지 못할 때 미안하고 송구해요. 배우는 이미 한번 만들어진 것에 옷을 입히는 역할이에요. 그런데 작가는 무에서 유를 창조해내는 거잖아요. 그런 면에서 배우들은 겸손해야 합니다. 운 좋게 좋은 배역 만나서 명예를 얻는 거잖아요. 배우가 그리 잘났나? 아니에요. 좋은 배우, 좋은 역할은 모두가 같이 만드는 거에요. 그러니 늘 겸손해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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