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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배병일 영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국가인권위원회가 청탁금지법을 준수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매년 제출하도록 한 규정을 삭제하라는 권고를 2016년 12월 8일 국민권익위원회에 보냈는데, 최근 권익위가 이를 수용할 수 없다고 하여 논란이 되고 있다. 인권위는 청탁금지법상 서약서가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폐지하라고 권고하였고, 이에 대해 권익위는 침해하지 않는다고 하면서 불수용 통보를 하였다고 한다. 같은 국가기관끼리 법령 해석을 둘러싸고 논란을 벌이는 것을 바라보는 국민의 입장에서는 매우 어이없을 뿐 아니라 전체 240여만 명에 달하는 서약서 제출의무자들도 더욱 착잡한 심정이다.

청탁금지법 제19조 제1항은 ‘공공기관의 장은 공직자 등에게 부정청탁금지 및 금품 등의 수수금지에 관한 내용을 정기적으로 교육하여야 하며, 이를 준수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받아야 한다’고 하고 있고, 같은 법 시행령 제42조 제3항에서는 ‘공공기관의 장은 법 제19조 제1항에 따라 공직자 등에게 연 1회 이상 교육을 실시하여야 하고, 부정청탁 금지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령을 준수할 것을 약속하는 서약서를 매년 받아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또한. 청탁금지법 제21조에서는 ‘공공기관의 장 등은 공직자 등이 이 법 또는 이 법에 따른 명령을 위반한 경우에는 징계처분을 하여야 한다’고 하고 있다. 이에 따라 청탁금지법이 2016년 9월 28일에 시행된 이후 대부분 공공기관이 지난해 말까지 청탁금지법의 적용대상이 되는 공직자 등으로부터 ‘나는 어떠한 경우에도 부정청탁과 금품수수 등을 하지도 받지도 않겠고, 위반사항에 대해서는 관련 법규에 따라 어떠한 처벌도 감수할 것’이라는 취지의 서약서를 이미 받았다.

이 당시에도 서약서 문제와 관련하여 양심의 자유 침해와 행정력 낭비라는 논란이 일었고, 서약서 삭제를 주요 내용으로 하는 법률 개정안이 지난 2016년 12월 1일에 국회에 제출되었다. 여기에서 몇 가지 문제점에 대해서 살펴보자. 먼저 법률에서는 정기적으로 청탁금지법의 내용을 교육하도록 하고 있지만, 서약서는 정기적으로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런데도 시행령에서는 서약서를 매년 정기적으로 받도록 하는 것은 법률우위원칙과 포괄위임금지원칙에 어긋나는 것일 수 있다. 다음으로 서약서는 공직자 등에게 당연히 요구되는 법령 준수 및 청렴 의무를 확인한 것에 불과해 양심의 자유에 대한 제한이나 침해 문제는 발생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법령준수나 청렴의무를 국가공무원법, 지방공무원법 등에서 규정하여 이를 적용받고 있는 공무원의 경우라도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문제 될 수 있고, 나아가 사립학교직원이나 언론인에게 법령상 서약서 제출의무를 강제하는 것은 두말없이 문제 될 수 있다. 또한, 공직자 등에게 서약서 제출의무를 부과하고 있지 않으며 직접 제재할 수 있는 조항도 없기 때문에 문제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나 기관장은 서약서를 받아야 하도록 강제되어 있고, 또한 기관장이 직무명령으로 서약서 제출을 명령하였는데도 이에 위반하여 제출하지 않는 경우에는 징계처분을 하여야 하도록 강제되어 있다는 점에서 직접 제재의 대상이 된다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240여만 명에 달하는 적용대상자를 잠재적 범죄자로 취급한다는 점이다. 이에 대해서 부정부패의 성격상 사후처벌보다 사전에 예방할 필요가 있고, 서약서도 법령준수의무를 확인하는 차원에 불과하기에 불가피하다고 한다. 그러나 부정청탁법상 위반이 있으면 처벌이나 징계를 받으면 되는 것이지, 위반 사실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미리 예단하여 서약서를 제출하도록 하는 것은 오히려 기인지우(杞人之優)라고 할 것이다. 헌법 제10조는 국가는 인권을 확인하고 보장할 의무를 가진다고 규정하고, 이에 따라 국가기관도 인권 감수성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도 권익위가 내년 말까지 서약서 제출 방식을 추가 검토할 예정이라고 버티는 것은 인권 감수성이 매우 부족하다는 점을 내외에 밝힌 꼴 밖에 되지 아니하여 매우 아쉽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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