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아나는 너의 뒷모습을 그려야지 이 봄날엔, 화가처럼 불타는 태양을 그려야지 이 봄날엔, 네 발자국 위에서 찰랑이는 바다를 그려야지 가지 말라고, 수 천 번 매달리던 내 마음을 데리고 별들이 초인종처럼 떨어져 내리는 텅 빈 들판으로 나가봐야지 이 봄날엔, 슬픔의 배후를 그려야지 사소한 것과 비루한 것과 통상적인 것들이 하나의 지평에서 끓어오르는 이 봄날엔, 구부정한 호수의 어깨에 곧 부화하는 날개를 달아야지 피라미와 개구리밥과 붕어의 알들이 공중으로 올라가 구름의 아이들을 낳을지도 몰라 구름 속에서 후두둑 분홍 만발한 꽃씨가 터지고 이 봄날엔,(후략)




감상) 어떤 봄에 대한 기록, 꽃이 피지 않았고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핏빛이라고는 없는 들판을 하염없이 걷다 돌아보면 눈알 빠진 맹수 같은 구름이 막막하게 공중에 깔려 있었다. 아무도 봄이라고 생각하지 않는 봄이었다. 하필 너도 떠났으므로 오는 봄이 아니라 가는 봄이었다. 아무도 봄이라 말하지 않았으므로 창밖으로 눈을 돌리는 일이 금기처럼 느껴졌다 .(시인 최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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