식물도시 에도의 탄생-무선
일평생을 전쟁과 권력투쟁으로 매 순간을 ‘생’과 ‘사’ 갈림길의 긴장된 시간을 보냈던 일본 전국시대의 무장(武將)들이 그 숨 막히는 순간들의 연속에도 식물학자를 능가하는 안목을 쌓으며 식물을 사랑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일본 전국(戰國·센고쿠)시대를 주름잡았던 무장 오다 노부나가(織田信長)와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 이 세 명은 무사였다는 점 외에 또 다른 공통점이 있다. 식물을 사랑했다는 점이다.

‘식물도시 에도의 탄생’(조홍민 옮김· 256쪽·글항아리 펴냄)은 일본의 식물학자 이나가키 히데히로(稻垣榮洋)가 전국시대와 에도(江戶) 막부 시대 무사들을 식물과의 관계로 색다르게 풀어낸 책이다.

에도 시대에는 유독 원예를 취미로 하는 무사들이 많았는데 여기에는 여러 이유가 있다.

식물을 좋아했던 도쿠가와 이에야스는 에도 막부를 연 뒤 성 안에 전용 꽃밭을 마련하고 식물을 수집했다. 꽃을 좋아하는 쇼군(將軍·막부의 수장)을 위해 지방 영주격인 다이묘(大名)가 지배하는 번(藩)은 진귀한 식물을 재배하고 이를 쇼군에게 바쳤다. 번은 또 소속 무사들의 교양과 정신 수양을 위해 원예를 장려했다.

다이묘들 사이에서도 저택에 아름다운 정원만들기가 유행이었다. 이들의 정원을 만들고 유지·관리하기 위해 식목·조경 전문가가 에도로 모여들었다. 전국시대 혼란이 끝나고 평화가 찾아오자 할 일이 없어진 무사들도 원예에 눈을 돌렸다.

무사들은 여러 꽃을 키우고 여기서 부수입을 얻기도 했다. 나팔꽃 재배가 유행해 변종 나팔꽃이 1천여 종에 이르렀다고 한다. 하급 무사 중에는 부업으로 진귀한 나팔꽃의 품종 개량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저자는 변종 나팔꽃을 얻으려면 열성 유전자끼리 교배해야 한다는 점에서 에도의 하급 무사들이 멘델의 유전법칙이 나오기 이전에 이미 유전법칙을 알고 있었을 것으로 추정한다.

무사의 이미지와는 어울리지 않게 작고 귀여운 앵초도 하급 무사들 사이에 유행했다. 렌(連)이라는 동호회를 중심으로 경쟁적으로 품종 개량이 이뤄지며 2천여 종에 달할 정도였다. 그러나 기술의 외부 유출을 금한 탓에 메이지 시대가 되면서 품종 개량 기술은 더는 전수되지 못했다.

무사들의 식물 사랑은 문장(紋章)에서도 나타난다. 서양의 귀족 가문들이 동물을 문장으로 즐겨 썼던데 반해 에도 막부의 무사 가문은 문장으로 식물을 즐겨 썼다.

도쿠가와 가문의 문장은 제비꽃을 모티브로 한 세 장의 꽃잎이었고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측근이었던 사카이 다다스구 가문은 들꽃인 괭이밥을 문장으로 썼다. 뽑아도 끈질기게 씨를 퍼트려 살아남는 강인함에 끌린 것이다.

에도 시대 하급 무사 가문 100여 곳은 논에서 볼 수 있는 잡초인 벗풀을 문장으로 썼다. 벗풀잎의 모양이 화살촉과 닮아 ‘승리의 풀’로 불렸기 때문이다.

책은 이 밖에도 성을 쌓거나 싸움을 하는 데 식물을 이용하고 영지 경영에도 식물을 활용했던 무사들의 면모를 소개한다.

저자는 “언제 죽을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전쟁과 권력 투쟁으로 날을 세우는 무장들이 섬세한 눈길로 식물을 보았다는 사실이 놀라울 따름”이라면서 “무장들은 식물의 특징뿐 아니라 그 매력까지도 잘 알고 있었던 위대한 ‘식물학자’”라고 말했다.
17쪽 부들의 이삭
74쪽 마름 열매(위)와 고오니비시 열매(아래)
190쪽 만년청
192쪽 솔잎난


곽성일 기자
곽성일 기자 kwak@kyongbuk.com

행정사회부 데스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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