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말이 중국과 달라서 한문자와 서로 통하지 않아 어리석은 백성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있어도, 마침내 자기의 뜻을 펼 수 없는 사람이 많아서” ‘훈민정음’ 해례본 예의편 첫머리다.

“옛날 신라 설총이 처음 이두를 만들었는데, 관료는 물론 백성들이 아직 그것을 쓴다. 그러나 모두 글자를 빌어 사용하기 때문에 어떤 것은 어색하고 어떤 것은 맞지 않는다. 속되고 이치에 맞지 않을 뿐 아니라 말을 글로 표현하는데 그 만 분의 일도 반영하지 못한다” 해례 정인지 서문에 당시 일반 국민의 언어 사용 어려움을 이렇게 토로하고 있다.

또 “이 28자로 무궁한 전환, 간명한 요약, 정치한 통달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배운 사람은 조회가 끝나기 전에, 머리가 둔한 사람이라도 열흘이면 이로써 글을 해석해 그 뜻을 알 수 있다. (…) 바람 소리, 학이나 닭의 울음소리, 개 짖는 소리일지라도 모두 글로 적을 수 있다”고 해례의 앞장에 써 놓았다. 글을 쓰는 국민에 대한 애정이 담뿍 담겼다.

한글이 창제된 지 3년이 지난 세종 28년(1446) 발행된 훈민정음 해례본에는 한글의 제작 원리와 사용법, 예시를 풀어 쓴 판본 등이 기록돼 있다. 훈민정음 해례본은 1940년 안동에서 발견된 국보 제70호가 있다. 이 국보로 지정된 간송 미술관 소장 해례본(간송본)이 유일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2008년 상주에서 같은 판본(상주본)이 발견돼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지만 이 훈민정음 해례 상주본이 수난이다. 문화재청이 ‘1조 원의 가치가 있다’고 감정한 훈민정음 해례의 상주본 일부가 10일 불에 그을리고 물에 젖어 얼룩이 지는 등 참혹하게 훼손된 채 사진으로 공개됐다. 상주의 고서적 판매상 배익기씨가 소장하고 있는 것으로 배씨는 상주·군위·의성·청송의 국회의원 재선거에 출마했다. 그는 후보 등록을 하면서 자신의 재산을 1조 4천800만 원으로 신고했다. 하지만 훈민정음의 실물 소유 확인이 되지 않아 재산 등록은 무산됐는데 이렇게 일부 사진을 공개한 것이다. 어느 산속에 묻어 놓았다 꺼낸 듯 낱장을 펼쳐놓은 곳에는 솔잎과 떡갈나무 잎이 깔려 있다. 깊은 애민정신이 담긴 국가적 유산을 이렇게 무지막지하게 다루나 싶어 안타깝다.

저작권자 © 경북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