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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원(주)컬처팩토리 대표
지난 4월 9일, 46년 동안 수많은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 국민의 사랑을 받았던 여배우 김영애 씨가 영면했다. 김영애 씨는 지난 2012년 췌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받았다. 지난해 재발해 투병 가운데서도 고인은 병원외출증을 끊어 50부작 ‘월계수 양복점 신사들’ 촬영을 마쳤을 정도로 마지막까지 연기 혼을 불태웠다. 드라마 ‘해를 품은 달’, ‘킬미, 힐미’, ‘닥터스’, 영화 ‘애자’, ‘카트’, ‘변호인’, 등 150여 편에 출연하며 우리 가슴에 깊은 감동을 주었다.

지난달 31일에는 또 한 분의 배우가 세상을 떠났다. 대구 최고령 현역배우인 김현규 선생이다. 1945년생인 선생은 1964년 연극 ‘해풍’을 시작으로, 무대를 꾸준히 지킨 대구 연극의 산증인이다. 지금까지 오직 배우의 길만 걸었다. 참여한 연극 작품 수만도 200여 편이 훌쩍 넘는다. 일찍이 ‘신 연극 중흥’ 운동을 선언하면서 대구 연극계에 큰 획을 그었다. 생전에 “당시 연극계엔 외국 번역극이 주였고, 창작극은 거의 없었어요. 우리가 주도한 신 연극은 말하자면 ‘우리 창작연극’을 만들자는 것이었지요”라며 시대를 앞서가며 대구연극의 주체성을 일찍이 강조하였다.

주요 출연작품으로는 ‘햄릿’ ‘춘향전’, ‘뜨거운 땅’,‘한여름밤의 꿈’ 등이 있으며 대표작은 필자가 연출한 극단 뉴컴퍼니의 뮤지컬‘만화방 미숙이’이다. 이 작품은 지역을 벗어나 지방뮤지컬로는 최초로 서울 대학로에서 장기공연되었음은 물론 국내의 여러 지방과 중국 상하이, 쑤저우, 우시 등 해외공연까지 총 700여 회의 공연실적을 기록한 작품이다. 이 작품에서 김현규 선생은 700여 회 중에서 550여 회를 극 중 전직 퇴역군인이자 만화방주인 역할인 ‘장봉구’ 역을 맡아 깊은 연륜에서 묻어 나오는 이 시대의 아버지상을 보여 주었다. 앞에서 언급한 배우 김영애 씨도 암으로 세상을 떠났지만, 김현규 선생도 암 투병의 경험이 있었다. 2008년 대구국제뮤지컬축제 초청작으로 뮤지컬 ‘만화방미숙이’가 수성아트피아에서 공연됐을 때 일이었다. 마지막 날 공연 때 배우들이 커텐콜을 마치고 모두가 퇴장하는데 김현규 선생은 퇴장하지 않고 혼자 무대에서 객석의 관객에게 갑작스레 큰절을 올리는 것이 아닌가. 배우들이 간혹 커텐콜할 때 관객에게 단체로 큰절하는 경우는 가끔은 있지만 혼자 남아 큰절을 하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었다. 관객은 극 중 ‘장봉구’ 역할을 맡은 배우의 큰절에 우뢰와 같은 박수를 보냈다. 당시 필자는 객석이 아닌 배우들의 등·퇴장로인 무대 옆에 있었는데 퇴장하는 김현규 선생의 얼굴에는 눈물이 가득했다. 필자는 ‘배우는 관객의 박수로 산다’라는 말을 떠올리며 기쁘게 그를 맞이 했다. 그런데 정적 큰절을 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김현규 선생은 배우와 스태프 모두에게 뭔가를 숨기고 무대에 오른 것이었다. 선생은 위암 판정을 받고 하루빨리 수술해야 함에도 공연 때문에 수술을 공연 다음 날로 연기했던 것이었다. “배우의 임무는 첫째도 둘째도 셋째도 약속을 지켜야 한다. 연습은 실전처럼, 부모님이 돌아가셔도 공연은 해야 한다”라고 평소에도 후배들에게 늘 말씀하셨다. 결국, 수술은 공연 다음 날에야 이루어질 수 있었다. 이처럼 목숨 걸고 늘 마지막 무대라고 생각하며 무대에 오르시던 영원한 배우가 영원히 무대에서 퇴장하셨다. 2005년 당신의 아호를 따 개관한 ‘우전(友田) 소극장’에서 2015년에 고희(古稀) 기념공연을 하였다. 제목은 ‘한번만 더 사랑할 수 있다면“이라는 작품으로 나이 들어 불러 주는 이 없는 노배우의 아픔을 담은 작품이었다. 이 작품은 필자가 김현규 선생과 공연한 마지막 연출작품이 됐다. 김영애 배우와 김현규 배우는 암 투병 가운데서도 목숨을 건 예술혼으로 이 시대를 살아가는 후배예술인들에게 큰 귀감이 됐다. 두 배우의 뜨거웠던 예술 투혼에 깊은 존경의 마음을 보낸다.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작품 ‘맥베드’5막 5장에 나오는 멕베드의 대사로 두 배우를 너무나 아쉽게 배웅한다. “인생은 기껏해야 걸어가는 그림자, 우리 역시 모두 잠시 무대 위에서 머물지만, 그 시간이 지나면 영영 사라져 버리는 배우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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