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미국에서 수염을 기른 사람들만 가입할 수 있는 정치단체가 만들어졌다. 이 단체는 20세기 초부터 미국 대통령이 수염을 기르지 않는다면서 링컨처럼 수염 기른 대통령을 내 보자는 취지에서 결성됐다. 하지만 이후 그 단체는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수염을 기르지 않은 워싱턴이나 토머스 제퍼슨 등 미국 독립 주역의 대통령도 있다는 것을 이들은 간과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수염은 남성의 성적 상징물임에 분명하다. 수염 모낭에서 성적 유인을 하는 분비물이 많이 나온다고 한다. 이 때문에 다윈은 수염을 진화시킨 원인이 ‘성적 선택(sexual selection)’이란 가설을 세웠다. 이후 진화심리학자들도 이 가설을 받아들였다. 남성 상징인 수염은 체 게바라나 피델 카스트로처럼 저항과 반항의 상징물이기도 하지만 히틀러나 스탈린, 후세인의 콧수염은 독재와 광기의 상징으로 세계인의 뇌리에 각인돼 있다.

수염 만큼이나 한 사람의 이미지를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머리 스타일이다. 최근 북한에서는 김정은의 헤어스타일을 지칭하는 ‘패기(覇氣)머리’가 ‘그이 머리’라 불리면서 젊은이들 사이에 유행이라 한다. ‘패기머리’는 김정은 집권 후 북한 매체가 처음 쓴 용어다. 패기머리는 옆머리와 윗머리를 짧게 자르고 앞과 윗머리만 기른 모양새다. 이 패기머리는 사실 마오쩌둥의 헤어스타일을 흉내 낸 것이다.

북한 김정은이 이번에는 남한의 인기 스타 박보검의 머리스타일을 차용한듯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한 때 북한에서 한국 드라마가 유행하면서 한국 배우들의 패션과 말투까지 따라 하는 북한 주민이 흔했다는데 김정은 스스로가 남한에서 유행하고 있는 ‘박보검 쉼표’ 스타일을 따라 하고 등장했다. 그간 북한 매체를 통해 비쳐 진 그의 모습은 머리카락을 바짝 빗어 넘기고 기름을 바른 마오쩌둥 스타일이었다.

그런데 김일성 생일 105주년인 지난 15일 일명 ‘주체무기’를 선보인 열병식 주석단에 오른 김정은의 머리카락은 영락없는 박보검 쉼표 스타일이었다. 오른쪽 이마를 살짝 덮은 쉼표스타일 머리로 만들어 놓은 것이다. 김정은 광기의 상징 헤어스타일의 변화처럼 생각도 좀 바꾸면 좋으련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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