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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식 시인
사월의 햇살에 움트는 새싹이 앙증스런 절기. 인간의 심연엔 푸름을 갈망하는 DNA가 있는지도 모른다. 나무숲 그늘에서 눈길을 멈추고 환희를 토하는 풍경은 내밀한 본능이 아닐까. 언젠가 한국갤럽 조사 결과 우리가 선호하는 취미 가운데 1위가 등산이었다. 봄가을 인산인해로 몰리는 산객을 보면 실감 난다.

‘금강’ 하면 왠지 고귀하고 성스러운 어감이 든다. 값비싼 다이아를 지칭하는 금강석이나 불교 경전의 하나인 금강경, 또는 일만이천 기봉을 자랑하는 금강산이 연상돼서다. 당연히 금강송도 훌륭한 송림이라는 선입견이 은연중 생기지 않는가.

소나무는 토질에 따라서 다르게 자란다. 특별한 수종이 있는 건 아니다. 씨앗이 싹을 틔워 성장하는 지역별로 상이한 명칭을 붙였을 뿐이다. 안면도의 안면송, 봉화의 춘양목이 그렇다.

마치 대게 청게 홍게로 분류되는 게의 생태와 흡사하다. 게는 ‘빵게’라 불리는 암컷이 알을 낳는 장소에 따라 종류가 결정된다. 수심 200m 정도에서 서식하면 대게가 되고, 1천m 넘는 심해에서 자라면 붉은 대게가 된다. 바다가 깊을수록 염도가 높기 때문에 홍게는 대게보다 값이 저렴하다.

그 옛날 보부상이 넘나들며 장사하던 ‘십이령 보부상길’을 복원한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 사전 예약제로 운영되는 탐방로는 일일 인원이 제한되고 가이드가 동행한다. 네 개의 선택지가 제시됐으나 단체 관람 등 조건이 필요했고, 결국 누구나 갈 수 있다는 1구간밖에 남지 않았다.

안내자를 보니 금강산을 관광할 때의 북한 보안요원이 연상됐다. 해방감을 만끽하고자 찾은 산길은 나름의 임무와 시간표를 가진 인솔자의 타성처럼 딱딱하다. 일대는 송이가 지천인 탓으로 등산로를 벗어나는 행위는 금지된다.

‘조령 성황사’가 있는 고갯길인 샛재. 둥치에 노란선과 흰색 숫자 표시가 선명한 아름드리 금강송이 울창하다. 산림청에서 문화재 용도로 쓰고자 4천여 그루를 점찍었다. 수인번호가 적힌 죄수복을 걸친 사형수 같다. 장자 말씀이 떠오른다. 그는 쓸모없는 나무가 천수를 누린다고 탄식했다.

‘가노 가노 언제 가노 열두 고개 언제 가노’ 떠돌이 상인의 애환을 통해서 조선의 시대상을 담아낸 김주영의 대하소설 ‘객주’. 이곳 보부상길이 발견되면서 삼십 년 만에 제10권이 완결됐다고 한다. 장편소설을 집필하는 작가는 남다른 인내와 체력이 필요하다. 여든을 바라보는 노작가의 필력에 경의를 표한다.

북면 두천리를 출발하여 금강송면 소광리로 빠지는 코스는 13.5km의 순탄한 탐방로. 국립공원과 달리 어쩐지 허술하다. 잡목만 무성한 풍광과 시멘트 포장길이 밋밋이 이어지고, 산행을 마친 후 두 시간 넘게 버스를 기다리는 지루함은 차라리 상술로도 엿보인다.

일행 중 서울 영등포서 왔다는 중년 부부가 있었다. 간밤 두천마을에서 일박한 발걸음. 금강송에 대한 외경심으로 기대가 부풀었던 그들은 실망감이 역력했다. “이게 뭡니까” 하던 볼멘소리가 귓전에 생생하다.

‘한국관광 100선’에 포함된 울진 금강소나무 숲길이 내달부터 입산이 시작된다. 흡인력 있는 명소는 방문자의 입소문이 좌우한다. 내방객을 홍보 대사로 모시는 마인드가 최우선. 정보가 널린 요즘은 모두 똑똑하다. 피드백으로 개선점을 강구했으면 싶다. 우리 고장 사랑의 진심을 담은 지난해 만추의 소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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